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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Dec 03. 2018

육아의 성공경험

교육학을 공부하다 보면 '성공경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성장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성공'해 보는지가 자신이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라고 느끼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당연히 뭐 교사가 성취 가능한 과제를 제공해야 되고 단계적으로 난도를 올려야 되고... 그런 것인데. 육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태어난 아이의 1년은 얕고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단 말이 과장이 아니다. 아이는 빠르게 성장한다. 그 속도에 맞춰 양육자가 제공해야 하는 것들, 예컨대  먹을 것과 놀 것, 잠자리와 재우는 방법, 돌봄의 종류 등이 계속 변한다. 이제 막 새로운 방식에 적응되려 하면 아이는 이미 변신하여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식이다.


1년이 지나니 내가 그 속도에 적응이 된 건지, 아니면 이제는 그 속도가 실제로 조금 더디어 진 건지, 허덕이던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제야 아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짧고 아름답게 기억될지 예감하기 시작했고, 아이가 자지 않을 때도(!!) 행복과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내 안에 육아의 성공경험이 쌓이면서 부모로서의 자기유능감이 올라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가 나에게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적당한 난도의 과제를, 적당한 간격으로 꾸준히 제공한 것이다. 먹는 걸 예로 들면. 이제 분유를 적당한 온도로 제 때 먹이는 일 쯤은 일도 아니다 싶을 때 이유식을 시작한다. 멀건 미음을 끓여 먹이는 건 할 만 하다 싶을 때 다진 재료를 넣어 적당한 묽기로 만들어 먹여야 한다. 이제 장난치려는 아이의 관심을 끌며 먹이는 것에 적응된다 싶을 때 밥과 반찬을 먹여야 하고 아이는 숟가락을 빼앗아 사방에 밥알을 튀긴다. 지금 우리는 여기까지 와 있고 이제 남은 과제는 스스로 즐겁게 먹도록 하는 일이다. 세상에.. 더 놀라운 일은 씻기기, 놀아주기, 외출하기, 잠자기 등 모든 과목에 이와 같은 커리큘럼이 포함되어 있다.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지만 여하튼 그 계단들을 지나와 여기까지 와 있고 그동안 나도 함께 성장했나보다. 앞으로 갈 길이 길지만 지금껏 쌓인 1년간의 성공경험이 있어서인지 두렵지 않다.


그러고보니, 남편의 입장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옷을 갈아입히거나 외출 준비를 할 때 가끔 답답한 마음이 들어 핀잔을 줬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슥슥 하면 되는데 왜 아직 못 하고 있느냐고. 우리는 출발점은 같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각자의 성공경험은 꽤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간과했다. 남편은 아이를 아주 잘 돌보지만 아이의 성장에 따른 육아의 변화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가 주도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어내는 자신감이 남편에게는 부족하겠구나.


아이에게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지만 아이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나를, 남편을, 우리 가족을 성장시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작년 이맘때보다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음. 물론 은유의 성장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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