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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Nov 22. 2018

나는 불편하다.


1. 주말에 종종 가는 집 근처 쇼핑몰이 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아이가 응가를 했다. 남편이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갈러 갔는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는 것이었다. 분명 바로 옆 화장실에 기저귀갈이대가 있었는데... 한 30분쯤 있다 왔던가? 돌아온 남편이 하는 말이, 기저귀갈이대가 없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자화장실에만 설치되어 있다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유실을 찾아갔더니 문 앞에 '남자출입금지'라고 쓰여 있더란 것이다. 그 앞에서 얼쩡대고 있으니 한 여자 직원이 다가와 안을 살피더니 지금 아무도 없으니 얼른 하시라 하곤 망을 봐주었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야기하는 남편이 매우 지쳐보였다. 내가 했으면 간단했을텐데...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생겼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보통 수유실은 모유수유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기저귀갈이대, 세면대, 젖병소독기, 전자렌지 등 유아를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2.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출생신고를 하자마자 입소대기등록을 해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아이사랑포탈에 가입을 하고 입소대기등록을 했다. 그러곤 잊고 있다가 순번이 궁금해서 남편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회원정보를 눌렀더니 단발머리에 핑크색 옷을 입고 볼이 발그레한 여성 이미지가 나타났다. 아마도 '부모회원'을 상징하는 그림인 듯. 그러고보니 출생 전 서비스의 카테고리명은 '예비맘', 첫 화면에 시간제보육 등 정책을 홍보하는 이미지는 아이와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내가 가입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3, 여름부터 집 근처 마트에서 하는 문화센터를 다닌다. 그 곳에서 귀여운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아이 사진을 남편에게 보여주면 매우 부러워한다. 자기도 다른 아이들, 새로운 것을 접한 아이가 어떤지 보고 싶고 함께 즐거워하고 싶다고. 그래서 주말에 하는 강좌도 있으니 한번 등록해보라고 카탈로그를 가져다 주었다. 남편이 그걸 보더니 "이거 나는 등록할 수 없는 것 같은데?" 라고 한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수업의 카테고리명이 '엄마랑 아이랑'이라는 것이다. 수업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에도 모두 엄마와 아이가 단 둘이 있었다. 사실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 베이비시터 등 누구나 등록할 수 있는 강좌다. 하지만 하고 싶다던 남편은 그 후로 별 말이 없었고 등록 기간이 지났다.


4.

5.

6.

......




'프로불편러'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내가 그게 된 것 같다. 진짜 진짜 불편하다 이런 것들이. 흔히 인식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출산 육아의 세계에는 이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도가 인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인식의 문제는, 불편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요새는 엄마들이 자기 편하려고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둥, 애엄마가 회사에 나와서 민폐만 끼친다는 둥, 남자는 선천적으로 애를 못 본다는 둥... 이런 인식들. 물론 불편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당연한 시대를 지나왔으므로. 그 시대의 기억이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생각이 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제도의 문제는 불편하고 불편하고 또 불편하기만 하다. 화가 나고 화가 나고 또 화가 난다. 정부의 정책이나 법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제도라는 건 인식을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 그러니까 수유실 앞에 붙어있는 남자출입금지 팻말 같은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다. 수유실 안에 칸막이나 잠금장치를 만드는 것 대신 남자를 출입금지시키도록 결정하게 하는 그런 것이다. 양육자를 젊은 여성의 이미지로 상징시켜놓고 남자이거나 할머니거나 할아버지인, 또 다른 양육자인 어떤 사람을 무심코 소외시켜버리는 그런 것이다. 그런 이미지 따위 없어도 되는 것을. 정책 홍보사진에 젊은 여성만을 등장시켜 마치 육아정책의 혜택은 오로지 엄마만이 수혜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다.


그런 제도 앞에서 내가 느끼는 미안함, 겸연쩍음, 죄책감의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가장 보편적인 가정의 형태를 가진 나도 이럴진데, 한부모, 조손 가정 등의 양육자가 느끼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왜 그렇게 무신경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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