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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Feb 25. 2019

나의 툴리

(영화 [툴리]를 보고 쓴 글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요.)


아이의 시간은 오로지 현재, 현재, 현재. 아이는 과거와 미래가 없다. 그 아이에게 집중된 나의 시간 역시 오로지 현재. 지금 먹여야 할 것, 지금 기저귀의 상태, 지금 아이의 기분, 지금 해결해주어야 할 일, 지금 해야 할 집안일...


그러나 나는 아이와 달리 기억 속에 과거를 가진 사람이다. 나의 역사는 나의 환상과 오해에 의해 재해석되어 내 안에 살아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 속의 나. 그 정 반대 지점에는 (내 방식대로 기억되어진) 과거의 내가 있다.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수록 과거의 나는 더 빛난다. 현재의 내 모습이 초라할수록 과거의 내 모습은 더 아름다워지고, 현재의 내 상황이 답답할수록 과거의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육아에 완전히 지친 어느 날, 아기를 재워두고 창 밖을 멍하니 보며 지난 날 아름답고 자유로웠던 나를 회상한다. 중얼중얼... 과거의 내가 되어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정신차리면 내가 미쳤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진실은... 과거의 내가 꾸었던 꿈은 현재 고스란히 실현되었다. 나는 사랑을 원했고 안정을 원했고 아이를 원했다. 과거의 나는 행복하기도 했지만 많은 시간 불안하고 슬펐다. 그렇게 아름답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기억 속 나의 청춘은 허상일 뿐일까? 글쎄. 하지만 혹시 허상일지라도 기억 속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위로한다. 그 기억이 없다면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 현재를 탈출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의 말보다 나에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는 그 생각이, 그 기억 속 장면이 나에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툴리의 반전은 너무도 놀라웠지만 동시에 너무도 당연했다. 이리도 현실적인 반전이 있을까. 툴리가 과거의 그녀라는 사실을 밝혀진 후, 브루클린에서 실랑이 중에 툴리가 그녀에게 외쳤던 말이 떠오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당신이 부러워요!"


과거의 나를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나의 그녀도 나에게 그렇게 말할까? 나를 꿈꾸고 있다고. 이보다 멋진 말이 있을까.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사실 나에게도 현재만 존재한다. 우린 모두 현재만 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행복이다. 우리 모두의 현재가 슬프거나 아프지 않기를. 최대한 행복하기를. 그러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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