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날 Apr 24. 2019

너의 처음은

한 사이즈 큰 아이의 운동화를 주문했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라고 쓰고 보니 새삼스러운 말이다. 아이 일 중에 처음이 아닌 것들이 더 드무니 말이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운동화를 사면서 이렇게 큰 신발을 언제 신고 걸어다니려나 했었는데.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상상만 해도 즐거웠었는데 말이다.


아이의 처음. 가장 재미있는 상상이다.


집 앞 초등학교의 하교시간,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은유도 저 아이들처럼 커다란 가방을 거북이처럼 매고 겉옷을 엉성하게 걸치고 교문으로 뛰어오겠지. 상상하니 맘 속에 커다란 꽃이 피어나는 기분이다. 태권도 학원을 다니게 될까? 바지에 흙먼지를 잔뜩 뭍힌 친구들을 집으로 우르르 데리고 올까? 햄버거를 사달라고 조르려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짧은 교복치마를 입은 아이들이 남자애들 얘기를 하며 꺄르르 웃는다. 은유도 저런 대화의 소재가 될까?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애는 언제 생길까? 난 아이의 비밀이 궁금해서 몰래 가방을 뒤지게 될까?


교복을 입은 아들과 엄마가 함께 장을 본다. 아이는 한 걸음 뒤로 떨어져 무심한 표정으로 엄마를 따른다. 그래도 계산을 하고 묵직한 비닐봉지가 두덩어리쯤 나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나설 것 같다. 은유도 무거운 걸 들어주겠지. 내가 들 수 있어도 꼭 들어달라고 졸라야지.


티비에 얼굴이 하얗고 기타를 잘 치는 청년이 나온다. 아주 미남은 아닌데 어딘가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은유가 저렇게 성장한다면 어떨까. 만약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어가 아이를 바라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로또1등이 된다면 어떨까?' 보다 훨씬 더 꿈 같다. 물론 막상 그 때가 되면 지금 모르는 걱정과 고민이 많겠지만. 그렇게 기대하던 순간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툴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