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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Sep 05. 2019

남편의 카톡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좀처럼 적응되지 않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하루 종일 울리는 핸드폰.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동시에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내 쪽의 대답이 늦었다. 그는 내 답이 늦는다고 서운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시간씩 답이 없으면 전화를 걸었다. 걱정돼서 전화했다면서.


당시에 내가 원하던 연애는 그런 게 아니었다.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만 만나고,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며, 저녁 시간 전화통화 정도 외에는 의미 없는 연락을 하지 않는, 그런 쿨하고 독립적인 연애였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정반대의 연애를 시작하고 말았다. 우리는 별 일이 없으면 매일 만났고, 떨어져 있을 때는 카톡 대화창 안에서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고, 둘 다 자취 중이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우리에게 집이 두 개인 것은 좀 낭비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 때쯤 결혼했다.


결혼을 해도 우리의 카톡창은 쉬는 날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주말을 제외하곤 말이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지금도 내 쪽이 답이 늦고, 텀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걱정했다면서.


얼마 전, 남편의 퇴근 시간 즈음에 카톡을 보냈다. 언제 오느냐 혹은 저녁 뭐 먹을까 이런 내용이었을 거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금방 확인하고 답을 보내거나 전화를 했을 남편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었다. 퇴근 시간인데 한 30분쯤 확인도 하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퇴근길에 탄 버스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었으면...' 갑자기 나도 모르게 겁이 덜컥 나서 남편이 늘 타는 버스 번호와 회사가 있는 지역명으로 뉴스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화면에 남편의 전화 수신 화면이 뜨고, 전화를 받자 버스에서 너무 깊게 잠이 들었다고, 집에 다 왔다고,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그때 내 마음을 감싼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사실은 그에게인 동시에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답이 없어서 걱정된다며 전화를 하는 그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이제야 반성을 하는 이유는, 이제까지 그가 나를 한 번도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당연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습관처럼 카톡을 보내는 내가 좋다.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쿨한 거 다 소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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