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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Nov 08. 2019

쓰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아끼는 물건 중 하나인 블루투스 키보드. 나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 키보드는 보고 만질 때마다 정이 드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애지중지 다루는 건 또 아니다. 무신경한 주인 만나 떨어지고 던져지기가 일쑤, 어떨 땐 은유한테 장난감으로 바쳐져 펑펑 얻어터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단순한 물건은 고장도 안 나고 어디 긁힌 티도 없다.


은유가 백일을 갓 넘었을 땐가, 중고나라를 통해 이걸 샀다. 둘이 같이 벌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돈 쓰기가 그렇게 어렵더라. 휴직만 해도 이런데 퇴직한 엄마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지. 전 같으면 새 것을 척 샀을 텐데, 며칠을 망설이다 좀 오래된 모델인지 만원인가에 나온 이 키보드를 사기로 했다.


받은 택배박스를 열었던 기분이 생각난다. 별 일도 아닌 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 택배박스 안에 키보드와 함께 귀걸이가 하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미키마우스 모양 은색 귀걸이. 혹시 잘못 들어갔나 싶어 판매하신 분께 문자를 보냈더니 기분 좋으시라고 보냈단다. 혹시 이 사람 내가 애 엄마인 것도 모르고 중고거래 로맨스를 꿈꾼 건가 했는데, 쿨하게 잘 쓰시라 하는 말투는 또 그게 아니다. 아 뭐야, 사람 설레게.


그렇게 아무 뜻도 없어 의아한 친절의 기억은 키보드를 만질 때마다 조금씩 묻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선물 같은 이 키보드와 함께 글을 쓰며 자신을 붙들기 시작했고, 공허할 뻔했던 나의 시간들을 채웠다. 실하게 쓰진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펼쳐둔 노트는 단순하고 지치는 일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찾을 수 있는 비상구였다.


쓰는 나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글 속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마치 이것저것 다 이해하는 듯, 고상한 척하며 쓰지만 실제 나는 훨씬 편협하고 세속적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현실보다 더 폼나는 나를 만들고 싶은 걸까, 글 안의 나를 보며 자존감을 지키려는 건 아닐까.


하지만 설령 그런 이유라 할지라도, 나의 글로 인해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글 속의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닐지 몰라도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니까. 내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스스로에게 일깨워주니까. 삶이 선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쓰기가 선행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현실의 나는 글 속의 나를 따라간다.


그래서 쓴다는 것은, 그것도 나에 대해 쓴다는 것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는 일이다. 강한 것보다 약한 것에 더 마음 쓰고, 나의 행동이 부끄럽지 않길 바란다. 나는 더 잘 쓰고 싶고 그래서 더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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