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회 오전 시간, 잠깐 아이를 돌봄선생님께 맡기고 자유시간을 갖고 있다. 요새 이런 시간을 자부타임이라고 하더라. 자유부인타임!
일주일에 아홉시간. 이 시간이 생기고 난 후 모든 게 할 만 해졌다. 절대로 이 시간에 육아용품을 검색하거나 아이 사진을 감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한 번도 그러고 싶어진 적이 없다. 피같이 귀한 이 시간을 최대한 하릴없이 보내기 위한 최적의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걸 옛날부터 좋아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혼자 갈 카페를 고를 때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들이 있다.
1. 규모와 테이블 간격
소신있는 주인이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주는 작은 카페들. 좋은데 혼자 가기는 부담스럽다. 몇 개 안 되는 좌석을 딱 한 잔만 시켜놓고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결격사유는 옆자리 손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잘 들린다는 것.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냥 그녀가 그놈이랑 헤어지길 진심으로 바라다가 나와버릴 수도 있다. 넓고 테이블이 많고 적당히 웅성거리는 곳이 좋다. 혹은 커피 맛이나 좌석 다 괜찮은데 인테리어가 촌스러워서 장사가 잘 안되는 카페도 한적하니 좋다.
2. 배경음악
난 우리말로 된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말로 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고보니 외국어로 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네!)
노랫말이 없는 음악이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외국 노래가 나오면 괜찮다. 지금 있는 이 곳은.... 어찌된 일인지... 우리말로 된 두 개의 서로 다른 노래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바에서 알바생이 본인이 듣고 싶은 노래를 따로 크게 튼 것 같다. 그래서 읽던 책을 덮고 이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써지니 신기하긴 하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강력한 동기가 중요하군.
3. 가격
오로지 나를 위해 4,000원 이상의 커피를 사줄 순 없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커피가 좀 비싸도 별로 아깝지 않은데 혼자서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면 뭔가 기분이 별로다. 자존감이 부족한가. 그렇다기 보다는, 혼자서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지나치게 행복한 느낌이라 (요즘의 나는 그렇다. 아마 혼자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거다.) 거기에 비싼 커피까지 마시면 벌 받을 것 같다.
난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겨우 요 정도 조건인데 충족시키는 곳을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지금까지의 탐방 결과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곳은 어이없게도 스타벅스다... 과연 스타벅스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 온 테이블이 더 많다. 역시 난 보편적인 사람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를 그렇게 자주 가고싶지는 않아서 (내기준에 약간 비싸기도 하고 또... 뭐라 해야 하나) 아직 정착을 못했다. 그러나 어서 빨리 정착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어디서 시간을 보낼지 이런 한량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난 돈 쓰는 일 중에 가장 아깝지 않은게 냉난방비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돌봄서비스가 이겼다. 지금 내가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아껴서라도 반드시 사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비어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