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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ul 15. 2022

거짓된 나를 만나는 기분

월급이 밀렸다. 당장 돈이 없어 카드값은 리볼빙 됐으며 곧 다가올 적금 자동이체와 월세, 공과금은 어떻게 할지 막막해졌다. 내 생활만 보면 회사한테 화나지만, 이상하게 대표 얼굴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주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닐 텐데라는 마음이랄까. 월급을 못 받아서 생활이 어려워진 것도 맞고, 봉사하러 여기 온 게 아닌 이상 따져야 할 건 따져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투자받기 위해 발 아프게 뛰어다니는 걸 알아서 인지, 회사에 애정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불안함이 커져 온갖 걱정은 되지만, 이성적인 사람이 되진 않았다. 대표는 회사 재정 문제로 월급 지급은 어렵지만, 다음 달엔 꼭 입금하겠다고 공지를 남겼다.


일단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현실적인 답을 찾아야 했다. 가족과 친구에게 돈 문제로 싸우기 싫어 생활비 대출을 받기로 했다. 원래 회사 사람으로 스트레스받고 있었는데, 돈까지 말썽을 부리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친구한테 답답함과 화남을 털어놨다. 회사는 어렵고 내 마음은 이렇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게 좋을지, 좀 더 버티는 게 좋을지 나도 뭐가 좋을지 몰라서 고민이 많다. 이런 와중에 일은 많고 사람 관계도 많이 복잡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멘털이 많이 흔들린다.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는 내 말을 듣는 내내 하품을 했다. 하품한다는 걸 인지한 순간, 말의 방향을 잃었고 본론 빠진 결론을 냈다. "그냥 좀 힘들었다고"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너는 나한테 맨날 힘든 얘기만 하더라. 들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한테 공감이라던가 그 이상을 원하잖아."


"그냥 듣기만 해도 상관없어, 물론 공감해주면 좋긴 하지, 그런데 이런 말들이 정말 듣기 싫어? 언제 제일 싫었어?" 한 번은 듣기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을 때 내 반응을 묻자 "화제를 돌리던데?"라고 말했다. 그 말에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동안 힘든 것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 슬픔을 감춰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조용히 흐르는 눈물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밥을 먹는데, 입맛이 없어 겨우 먹었다. 어색해진 분위기가 싫어 애써 웃다가 다시 눈물이 나오려 해 참다가,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친구는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분위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대화의 방향을 잃었다. ‘힘든 상황에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둘이 힘들어지니까. 일단 말을 하지 말자.’ 그렇게 혼자 다짐하자마자 나 자신이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정말 힘든 순간에 의지할 사람이 없구나. 친구랑 같이 있는 동안 나는 작아지기만 했다. 피곤한 상황에서 힘든 얘기 들으면 힘들 수 있는데, 그걸 이해하기엔 내게 여유가 없었다.


다음날 한의원에 갔다. 모니터를 많이 봐서 허리가 틀어졌고, 욱신거림 때문에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받을 때마다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회사에서 힘들게 한 사람은 없었어요?" 내 이야기를 하면 불편해하실까 걱정됐지만, 지금 당장 답답함을 털고 싶어 이기적이게 하나둘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은 내 말 하나하나 공감해줬고 자기 이야기를 덧붙이며 조언까지 해주셨다.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음이 다 풀린 건 아니지만, 말하고 나니 가벼워졌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알았다.  나는 단지 대화 나눌 상대가 필요했다는 걸. 속으로만 앓고 있다가 겨우 꺼낸 말에 위로가 필요했다는 걸. 대화의 상대를 잘못 찾았던 거다. 이번 일로 그 친구와의 대화가 조심스러워졌다. 이 말을 하고 싶은데 저 말을 하고 있고, 저 말을 하고 싶은데 이 말을 하고 있다. 자꾸만 대화의 갈피를 잃으니 대화가 불편해졌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꾸만 거짓된 나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답답함을 털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중요했다. 즉 내 진짜 문제를 찾아야 했다. 회사도 친구도 일도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아 여유가 사라진 지금, 날이 갈수록 예민해진다. 사소한 문제도 확대 해석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괜찮다는 뻔한 말이라도 좋으니 내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시간과 말이 필요했다. 나이 들수록 하고 싶은 말을 아끼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좋겠고,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이전의 상황까지 말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귀찮을 때도 있다. 어차피 정답도 없는 거 그냥 다 내팽개치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러기 싫은 마음도 존재한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 해결하고 싶은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고 지금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잠시,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삶을 바라본 이전의 나를 되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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