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Apr 11. 2022

엄마 아빠 직업이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때 엄마 아빠 직업이 부끄러웠다. 변호사, 선생님, 간호사 등 우리가 알만한 화려한 직업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직업을 물을 때마다 주부, 회사원이라고 하거나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런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그렇다.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한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이름만 들어도 감탄할 만한 직업을 선망하게 된다. 그런 점에도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의 직업이 껄끄러웠다.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런 선입견은 교육의 문제인가. 살아온 환경, 시대 때문인가. 내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괜히 부모님의 모든 모습이 부끄러웠다. 깔끔하게 입지 않은 옷도, 삐죽 삐져나온 머리스타일도, 큰 목소리도. 다행히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신다. 공장에서 8시간씩 근무하다가 몸과 마음이 상한 채로 일을 그만두셨다. 뭐 먹고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공부하셨다. 그리고 합격했다. 엄마는 자신이 요양보호사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하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하셨다. 누군가를 케어할 수 있을지, 성질이 고약한 사람을 만나면 어떡할지, 기저귀도 갈아줘야 할지, 새로운 직업에 대한 걱정과 직업의 편견 때문이었다. 자기가 고민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본인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난 엄마와 생각이 다르다. 공부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강의 들으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엄마가 대단했다. 누군가를 케어하는 건 힘들고 어렵다. 할 수 있는 게 이거뿐이라고 하셨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위로되는 사람인 게 멋있었다. 엄마는 강아지 2마리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 집에서 청소하고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일은 어렵지는 않으나 나름의 고됨이 있었다. 원래 엄마 성격이면 금방 그만둘 법도 한데 그 안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며 오래 일하고 계신다. 최근 내 생일에 엄마가 용돈을 주셨다.


용돈 왜 줘. 안 줘도 돼.
차라리 이 돈으로 여행 가.


내가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겠어.
내가 돈을 벌 수 있고 너한테 줄 수 있을 때
주고 싶어. 이것도 내 행복 중 하나야.


 엄마가 월급 받고 이불을 구매하셨다. "내가 월급 받아서 산 이불이야. 얼마 게? 30만 원" 왜 그렇게 비싼 걸 사냐고 묻지 않았다. 가격이 얼마든 엄마가 좋아하는 걸 자신이 번 돈으로 구매했다는 사실이 어린아이처럼 신나 보였으니까.


 아빠는 10년 넘게 일한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어 손가락을 절단했다. 한순간에 장애가 생겼다. 회사에선 아빠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켰다. 하지 않았던 업무였다. 업무에 적응하지 못한 아빠는 결국 이직하셨다. 이직한 회사에선 아빠의 경력을 인정해 주셨지만,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월급을 낮췄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근무지를 바꿨다. 60세가 넘었는데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업무에 도전해야 했다. 아무리 경험해도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뛰어들어야 한다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쓸쓸해지는 선택이었다.


 아빠가 이직한 회사 근무 환경을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쇳가루가 날아다녀 눈에 안약을 넣어야 해. 그래도 아직까지 야근은 없어.” 몸이 망가질 게 뻔히 보이는 환경이 씁쓸했다. 원래 아빠 나이는 퇴직할 나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일을 하신다. 노후를 위해.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다른 곳도 찾아보면 안 되냐고 말만 할 뿐.


난 이제 직급 필요 없어.
그냥 딱 내 할 일만 하고 퇴근하고 싶어.
무리하지 않고 싶고. 다 귀찮아.
여기 부장은 나한테
형님, 형님 하면서 배려를 해주더라고.
난 이 정도면 됐어.


 아빠는 보일러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셨다. 여름엔 한가했고 겨울엔 바빴다. 보일러라니 멋이 없었다. 그럼에도 겨울이 되면 일부러 보일러 얘기를 꺼내며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소매를 걷어내며 열심히 말씀하셨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일이 아무리 고돼도 “부장이니까 부장이니까.”를 입에 달고 사셨다. 직급의 무게가 이렇다면서. 내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자부하며 일을 하셨다. 그랬던 아빠는 온몸을 바쳐 일했던 회사에 배신당하고 새로운 업무도 쉽지 않으니 몸보다 마음이 많이 지쳐 보였다.


 어렸을 땐 내가 크면 엄마 아빠한테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줄게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다 큰 나는 여전히 나 하나도 버겁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무능력해 보였다. 비록 나는 이렇지만,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 아빠는 대단해 보였다. 말하지 않은 고됨, 나만 알고 있는 힘듦. 묵묵하게 그 일을 견디고 살아가는 엄마 아빠의 삶이, 직업이 정말 대단했다. 그래서 난 엄마 아빠의 직업과 삶이 부끄럽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감정을 내려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