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Sep 12. 2022

드디어 퇴사

 드디어 퇴사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객관적으로 보면 퇴사해야 하는 이유는 수두룩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많으니까. 제삼자 입장에서 답답하다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꿋꿋하게 회사를 다녔다. 이를 테면 월급 지연, 상사의 막말, 책임 떠넘기기, 업에 대한 무시 등. 예전의 나라면 "이딴 회사! 돈 많이 준다고 해도 안 다녀!"라고 씩씩거렸을 거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이직에 지쳐 프리랜서를 했던 적이 있었다. 프리랜서 어플에 나를 소개하고 발로 뛰며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했다. 그렇게 먹고살만할 때쯤 코로나19가 터졌다. 어렵게 잡은 프로젝트가 하나둘 사라져 갔고 동시에 생계에 문제가 생겼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꺾고 이 회사에 입사했다.


 합격과 동시에 다짐했다. 여기선 어떤 일이 있어도 그냥 나오는 일이 없게 하자.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답답하면 그 답답함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보자. 뭐든 결과를 만들어내자. 에디터로 입사해도 마케팅뿐만 아니라 잡일까지 다양하게 했기 때문에 내게 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문제를 회피하면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이 시간만 버린 사람. 그때 그 다짐이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좋은 상사를 딱 1명 만나봤다. 직원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명확한 길을 내어주는 상사였다. 하지만 여기선 상사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결정 때문에 2~3번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상사를 보며 많이 지쳤다. 결국 퇴사를 결정했는데 내가 사직서를 쓸 때쯤 그 상사도 사직서를 냈다. 


 대표는 상사가 아닌 나를 붙잡았다. "이제 네가 하고 싶었던 걸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 그동안 하지 못 했던 것들 해 봐. 나도 그 뜻에 동의해." 그 말이 내 퇴사의 결정을 번복하게 했다. 다들 그걸 믿냐고 혀를 찼지만, 나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표의 말에 예전에 내가 했던 다짐이 떠오르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믿어보자며 합격했던 회사에 사과하고 이 회사에 다시 다니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그 뒤로 월급이 지연됐다. 직원들은 답답해했다. 왜 월급을 줄 수 없는지 언제쯤 줄 수 있는지 말해주지 않은 대표 때문이었다. 우린 서로서로가 주워들은 말을 모아 추측하며 불안을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많이 예민해졌다. 웃으라고 한 말에도 가시처럼 들렸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구는 일이 많고 누구는 일이 없는 과정 속에서 직원들끼리 벽을 만들기도 했다. 월급을 주지 않은 회사 때문에 직원들끼리 불편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지쳤다. 이 와중에 일을 안 할 수 없으니 만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신기해하는 동료도 있었다. "월급도 안 주는데 왜 해?" 그 말조차 불편했지만, 웃으며 답을 회피했다. 5개월이 지나자 투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사람에 지쳤을 때다. 발 아프게 뛰고 입 아프게 말하며 받은 투자였지만, 회사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 사람들이랑은 회사보다 동아리에 가깝다고 생각할 만큼 친했다. 친한 만큼 선을 넘을 때도 있었지만, 그 친함이 무너질까 아무렇지 않은 척한 적도 많았다. 퇴사를 하니 지난날들이 스쳐갔다. 월급 지연에 직원은 많이 퇴사했고 내 마지막 근무 날에 휴무인 사람도 있었기에 쓸쓸히 사무실 밖을 나갔다. 내일도 출근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많이 했다. 친구보다 회사 사람들이랑 술도 많이 마셨고 질투도 했고 일에 욕심나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치열했고 치열하지 않았다. 지난 나의 다짐이 나를 붙잡은  알았는데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퇴사를 망설였던 것 같다. 아무리 친해도 퇴사하면 연락의 횟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때의 즐거움과 그때의 성취감을 공유할 사람과 마음 맞으며 일했던 사람이 이제 없다. 앞으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 이런 즐거움, 성취감을 공유할 팀원을 찾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또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결정을 망설이기도 했다. 물론 곧 30대 중반이라 이직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기도 했고.


술이 들어가자 둘 다 얼마간 발랄해졌고 그러자 과거와 닮은 모습들을 서로에게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홍대의 지하 바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 마시던 수많은 병맥주들과 재미난 에피소드로 가득했던 작은 공연들이 떠올랐다. "술을 마시면 내가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잃어갔던 기운을 되찾는 거 같아. 어딘가에 피처럼 흘려버린 활기를 다시 마시는 거지."

- 손원평 작가 <프리즘>


 많이 예민하고 까칠해진 내가 싫어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선생님은 내게 '예민, 의심, 폭력'이 평균치보다 조금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요즘 기분과 상태를 공유하며 치료받고 있다. 선생님은 회사에 미련 있는 내게 말했다. "새로운 환경으로 가면 기존 사람이 잊혀지는 게 당연해요. 그게 정상이에요. 계속 지난 시간 동안 만났던 사람을 끌고 가면 나만 힘들어져요. 그 회사에서 딱 1명만 남아도 좋은 거고. 새로운 회사에서 또 다른 1명을 만나는 거고. 그렇게 관계를 맺어가는 거예요.” 애매한 말이 아닌 정상이라고 명확하게 말해서인지 안심됐다. 맞는 말이었다. 과거에만 머물 수 없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놓아두고 새로운 나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니 나의 행복을 막는 것들과 멀어질 필요가 있다. 모든 걸 붙잡지 말고 붙잡을 수 있는 것들만 잡아야겠다. 나를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거짓된 나를 만나는 기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