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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Dec 03. 2022

쓰면서 정리하는 생각, 일하기 싫은데 일하고 싶다.

일하고 싶은데 일하기 싫다. 놀고 싶은데 놀기가 귀찮다. 마음이 자꾸 엇갈려서 도대체 나란 녀석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인데 나 자신이 어렵고 혼란스럽다니 너무 이상하다. 어떤 사람이 내게 '왠지 까다로울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예? 저만큼이나 까다롭지 않은 사람도 없을걸요?'라고 답했었는데 이젠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일을 구할 때 복지부터 사람, 일의 재미, 업무 분위기 등 하나하나 따지고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그만두는 나를 보고 말이다. 나도 적당히 타협하며 지내고 싶은데, 시간이 낭비되고 내가 낭비되는 것만 같아 쉽지 않다. 다들 이렇게 살아간다던데 그렇다면 나는 다들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인  걸까?.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소모되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 감정이 귀찮고 무료해진다는 걸 알기에 나도 모르게 방어본능이 작용해 방어모드가 된다. 이번에는 괜찮기를, 제발 이번에는 나쁘지 않기를 바랄 뿐.


완벽한 직장이 있을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일이 괜찮으면 사람이 별로이고 사람이 별로이면 일에 익숙해진다. 뭐 어딜 가나 별로라면 익숙한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며 나와 타협을 한다. 이런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적당히 자신과 합의하려는 내가 싫었다. 거창한 꿈이든, 소소한 꿈이든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 나가겠다며 발버둥 치던 내가 겨우 이 정도인가 싶은 마음이랄까. 고작 이 정도의 모습에 만족을 느끼는 듯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나아가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이름이 소개되거나 칭찬받으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조용히 살고 싶달까. 그럼에도 칭찬은 좋고 계속 받고 싶지만 말이다. 역시, 나는 이상한 사람인 걸까? 유명해지고 싶은 것도 아닌데 익숙한 일을 자꾸 제쳐두는 이유는 뭘까?


예전부터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걸 좋아했다. 영향엔 책임이 따르기도 하지만 '고마워. 덕분에~'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말을 더 듣고 싶어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나서서 하기도 했다. 반대로 '너 때문에'라고 하면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땐 나를 좋아하던 사람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즉, 나는 말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만큼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이게 나니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지만 다행히 내게 상처 주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한테는 화가 날 뿐 위축되진 않는다. 그럼 나는 명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로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치를 전달할 수도 있고, 골목 뒤에 있어 보이지 않던 사회의 현실을 꺼낼 수도 있고, 무료한 일상을 소설이나 에세이로 따뜻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말만 들어도 설레긴 한다. 아쉽게도 이 설렘 하나로 이 일에 뛰어들 수 없는 건 바로 현실, 돈 때문이다.


어릴 땐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적당히는 늘 부족해서 돈을 빌리거나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걸 참아가면서 생활했지만. 돈이 없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할 때도 있었지만 지질해 보이기도 했다. 뭐 하나 살 때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최근엔 결혼하는 지인이 많이 늘고 있다. 지금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5년 안에는 하고 싶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매일 놀듯이 살고 싶으니까.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같이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과 취미도 많다. 지금 하고 있는 것만 필라테스, 기타, 스쿼시, 소설 쓰기 수업. 이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뭘 하려면 돈이 뒤따라오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은 돈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그렇게 돈과 명예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만족할 순 없고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되는데, 포기하는 법을 모르겠다.


여전히 일은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다. 만약 회사를 또 그만두면 괜찮은 회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야 하는 노동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니까. 답 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갈대같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일단 최근에 합격한 회사에 끈기 있게 다녀봐야겠다. 그동안 사회적 기업에서도 일했었고 브랜드 스토리텔링 및 취재 일도 해봤다. 둘 다 재미있었다. 글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다양성은 있어도 깊이가 없다는 걸 느꼈다. 이번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전문성을 키울 때가 아닐까.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봐야 앞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옳은 선택이란 없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일단 마음이 조금이라도 기울이는 쪽으로 시도하면서 배워나가는 거지. 명예를 포기했지만, 사실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는 회사고 취미는 취미니까. 취미를 통해 소설을 완성하면 된다. 일하면서 느낀 감정, 전문성을 키우면서 느낀 감정, 출퇴근할 때 느낀 감정들 하나하나가 다 되돌아올 거라 믿는다.


나는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나를 소모하고 있지 않다. 여전히 모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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