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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Dec 18. 2022

현 상사에게 전 상사 향기가 난다, 좌절과 현타

퇴사, 3개월 휴식, 다시 취직. 쉬고 싶은 마음과 일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취직을 결심했다. 단, 내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회사만 지원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조급해지지 말자. 이전 회사의 퇴사 사유는 많았지만, 그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요소를 생각하며 고려 사항을 적었다. 돈, 업무, 사람.


월급 지연으로 생활이 불안정하니까 심적으로도 불안했다. 예민해지면서 내가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 괴로웠다. 걱정 없이 일을 하고 마음 편히 살려면 생활의 안정감은 정말 중요한 항목이었다. 나는 주로 일을 벌이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열정도 적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고 회사에 도움 되는 일을 찾으며 끊임없이 성취감을 찾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이전 상사는 겁이 많아 안정적인 걸 추구했다. 왜 안 되는지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채 '지금은 아닌 거 같아'라고 애매하게 거절했다. 이런 날들이 많아질수록 기대심리는 낮아지고 시키는 대로 일하게 됐다. 유지할 단계가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갈수록 일은 재미없었다. 밝았던 표정을 잃어가니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까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람. 하루의 반 정도 붙어 있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기 시작하면 그 시간 자체가 괴로워진다. 예민해지면서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졌고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점점 여유가 없어지는 나를 보고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난 올바른 방향을 지시하는 상사, 시너지 줄 수 있는 동료, 불안하지 않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기로 했다. 이 바람은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겠지. 자신이 상처받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바라는 점이 많을수록 지원서 넣을 곳이 없었고 실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괜찮은 곳이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아 보여서 잡플래닛을 켜면 평균 평점이 1점 혹은 2점이었다. 회사를 애정 하는데 퇴사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테니 평점이 낮을 순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력서 작성을 포기하고 미루던 때,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서 들어본 적도 있었고 복지도 괜찮아서 면접을 봤다. 월급도 나쁘지 않았고 일도 터치하지 않는다고 하니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직원들도 화목하다는 말에 괜찮지 않을까 기대도 됐다. 출근한 지 2주 정도 됐지만, 실제로 만족하고 있다. 일도 재미있고 텃세도 없고 무언가의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팀원들 성격도 좋았다. 점심, 저녁도 지원되니 돈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그러다 상사가 출근하면서 우려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 직장 상사의 성격과 너무 닮아있었다. 그분 밑에 있으면 성장도 못하고 멈춰있을 거란 생각에 퇴사를 결정했는데,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감정 노동을 싫어하는 나이가 되니 지레짐작하고 시도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졌다. 내가 본 상사는 감정적이고 질투가 많아 보였다. 물론 짧은 시간에 상대를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고. 몸이 좋지 않아서 출근하지 않았던 시간에 나는 팀원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자꾸 챙겨주는 마음에 나도 마음이 열렸고 조금씩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런 관계가 상사 눈에 조금 불편했던 것 같았다. 팀원이랑 우연히 화장실에서 마주쳐서 같이 들어왔는데, 그 모습을 보고 '너네 벌써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라고 하거나 '내가 없는 사이에 벌써 친해졌네. 벌써 그러면 안 되는데, 아파도 출근했었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했다. 물론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상사도 내가 다른 팀원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다 알정도로 질투가 심했다.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뭐 그건 상관없지만, 다른 부분에서 피해가 생겼다. 내 의견은 그냥 거절했고 똑같은 말을 다른 사람이 하면 좋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말을 아끼게 됐다.


상사가 줬던 미션을 수행하면서 이전 마케팅의 아쉬운 점들을 정리해서 공유했다. 이유까지 덧붙였지만, 상사는 나를 불러 설명하라고 했다. 설명하는 건 좋은데 말하고 있는 내 옆에서 톡 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말을 버벅거렸다. 어쩜 이전 상사랑 이런 것도 비슷할까. 팀원을 불러 회의하자고 하면 늘 카톡 아니면 인스타그램을 했다. 바쁜 게 없다는 건 그 당시 모두가 알던 사실이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니까 열정적으로 말했던 모습이 어느새 주눅 들며 말하기 귀찮아지는 단계까지 왔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텐데, 어차피 다 까먹을 텐데. 그때가 생각났다.


면접 때 대표가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줬다. 내가 하는 말에 '선한 사람'인 것 같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오랜만에 들었던 칭찬이라 기분이 묘했다.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면서 멘털도 약해졌던 때라 그 말에 힘이 났다. 팀원에게 내가 카피를 잘 쓰니까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상사는 그 면접 자리에 같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글 쓰면 대표는 분명 '우리와 결이 맞지 않지 않은 사람이네요.'라고 말할 거라 했다. 순간 내 기획안과 글은 대표까지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사가 썼던 글을 봤다. 선입견을 가지고 본 걸 수도 있어서 다른 지인에게 홈페이지를 보여줬는데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설명이 없고 너무 뜬금없고 중구난방이라고 했다. 내 생각과 동일했다. 상사는 그 홈페이지를 참고하면서 글을 수정해보라고 했다. 내 글이 대표에게 가려면 상사를 거쳐야 한다. 즉 내 스타일의 글을 보여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일하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은 다 좋은데 그 하나가 문제라면 좀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하나 때문에 다른 좋은 것들을 포기하기 아쉬우니까. 다른 회사에 간다고 해도 어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고. 맞는 말이었다. 근데 자꾸 이전 직장 상사가 떠오르면서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고민이 쌓여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 상사가 마케팅 회의를 요청했다. 그 자리에서 마케팅전략팀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도 마케팅팀이니까 다른 분야의 마케팅을 말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상사는 자기 보고 나가라는 뜻 같다고 말했다. 상황만 보면 나라도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상사의 태도가 조금은 이해됐다. 이해된다고 해도 그런 태도는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상사가 없는 시간 동안 팀원이랑 친해지고 우리끼리 회의하는 모습에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나를 나가라는 것처럼 하는데, 이제 막 들어온 네가 뭔데. 나 없이 회의를 진행해?' 뭐 여전히 내가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는 걸 수도 있지만.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회의를 하다 보니 내게 의견을 묻고 싶었다는 팀원들, 그 속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들어보니 상사는 상대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점이 좋고 싫은지를 말하기보다 '너 내가 책임져주니까..' 이 말에 당황했다는 말도 들었다. 고집이 있어 보였다. 사실 위치가 있으니 고집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옳은 고집인지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애매한 거절을 당하다 보면 의견 내기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고 상사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고 맞지 않을수록 지치는 건 팀원들이니까. 내 기획안을 다들 좋아해 줬지만, 상사는 불명확한 피드백을 줬다. 길다, 왜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 반면 팀원들은 이유가 명확하고 설명이 잘 있어서 좋다고 말해줬다.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 사람들처럼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칭찬이라 좋았던 걸 수도 있고. 실제로 상사가 쓴 글 이탈률은 평균 89%였고 머무는 시간은 1분이 되지 않았다. 판매까지 이루어진 글은 홈페이지가 아닌 인플루언서 블로그였다. 그 글을 읽어보니 공감, 설명, 경험 등이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들어있었다. 단순히 짧고 긴 게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내 방향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벌써부터 고개를 숙이지 말고 상사가 원하는 버전과 내 버전에 근거를 더해 다시 한번 전달하려 한다. 상사의 경력과 살아온 시간을 존중해줘야 나도 그 존중을 같이 받지 않을까 싶다. 그 시간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기도 하고. 내가 자존감이 낮아졌던 것처럼 상사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으니까. 그 환경을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겁나서 도망치는 거... 멈추고 싶다. 진심으로.


추신.

내게도 후배가 생겼을 때가 있었다.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되기도 했다. 경력은 내가 더 많지만 나보다 능력이 좋으면 어떡하지,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으로 내가 나를 괴롭혔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일을 잘하면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로 보는 게 아니라 시샘하듯 봤다. 친근한 태도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며 삐뚤어진 시선으로 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다. 지금까지 10년 정도 사회생활하면서 좋은 상사를 딱 한 명 만났다. 그 뒤로는 저런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되는 사람만 만났다. 좋았던 상사를 떠올려 보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줬다. 내가 부족한 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줬고 잘 한 건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콕 집어 말해줬다. 덕분에 일 할 때 어떤 시선으로 진행하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상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해낸 나를 보며 좋은 의견이라고 칭찬도 해줬다. 즉 나와 상사의 생각이 합쳐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었고 그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의 재미까지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좋은 리더를 찾기 힘들다. 여전히 아부가 필요한 시대같달까. 내가 그런 회사만 다녔나. 가끔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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