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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Nov 09. 2022

아빠의 청춘, 환갑 선물로 2박 3일 제주여행

 아빠 환갑이다. 사실 가족 식사만  생각이라 딱히 준비한 건 없었다. 심지어 회사에서 월급이 3개월이나 밀렸 퇴직금도  받은 상황이라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생신이 다가오지만 안심됐던  요즘 환갑은 넘어가고 칠순만 챙긴다는  덕분이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아빠는 무언가 바라는  보였다.


“요샌 환갑 잘 안 챙긴대.”

“안 챙기긴 뭘 안 챙겨. 친구들 다 잔치 사진 보내던데.”


아빠는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친구의 잔치 사진들을 넘기는  같았다. 씁쓸한 표정을  딸로서는  좋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부러워하는  아닌 자랑하고 싶은 선물. 분주해졌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형제들끼리 생일 때마다 생일자에게 용돈을 주고 생일자는 가족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여기서 내가  일은 식사할  있는 식당을 찾고 케이크를 주문하는 일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없었다. 결국 2 3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속초 이후로 아빠랑 둘이 떠나는 여행은 오랜만이다. 나보다 들뜬 아빠는 제주도 여행    입을지,  신을지, 가방이 없는데 어떡할지 등의 고민을 말했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이 할아버지 생신이라 아빠는 시골로 내려갔고 가족들에게 딸이 제주도에 보내주기로 했다며 자랑했는지 큰아빠와 큰고모한테 연락이 왔다. “여기 여기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 아빠랑  다녀와.”


아빠는 나보다 체력이 좋다. 늦잠 자는 나와 달리 새벽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신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는지 물으면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갱년기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이전과 조금씩 달라진 성격을 보니 갱년기가 찾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의 체력은 좋다. 어디를 가자고 하면 제일 먼저 준비를 마치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준비를 하셨다. 나는 아빠 무릎이 아플까 여행 일정을 여유롭게 계획했지만, 20년 만에 처음 제주도에 왔다는 아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찾고 싶어 했다. 


아빠가 말하는 여행지와 내가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행 코스를 짰다. 성수기인 제주도는 비행기 표가 제법 비쌌다. 왕복 10만 원을 넘겨본 적이 없는 내게 일인당 20만 원의 비행기 표는 손이 조금 떨렸다. 아빠도 비행기 표 가격에 놀랐는지, 취소표도 노려보고 아침에 뜨는 비행기가 저렴하다면서 10만 원 이내로 예약할 순 없는지 계속 물었다. 아무리 저렴해도 8만 원이 넘는다고 말해도 다음 날이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돈 없는 딸이 돈을 쓴다는 사실이 꽤나 신경 쓰였나 보다.


계양역에서 만나 같이 김포공항에 갔다. 아빠는 춥지 않냐며 옷은 얼마나 챙겼는지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가 원래 이렇게 다정했었나) 성수기는 성수기다. 공항에 사람이 너무 많았고 소란스러워서 정신없었다. 이 와중에 아빠는 오랜만에 비행기를 탑승해서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주변 소음에 잠시 넋 놓게 됐지만, 아빠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탑승권 출력해서 짐은 이렇게 맡기는 거야. 여기선 신분증과 탑승권을 보여주면 되고, 저기에선 주머니에 있는 것들 다 꺼내고 가방을 검사할 거야.” 


주변 소음에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았는지 여러 번 내게 같은 말을 물었고, 순간 왜 이런 것도 몰라.라고 바닥난 인성을 보여줄 뻔했다. 모르면 알려주면 되는 건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답답해할까. 미간의 주름을 풀고 공항 안으로 겨우 들어왔다. 배고프다는 내 말에 아빠는 카페에서 빵과 음료를 사줬다. 음료 몇 모금을 마신 뒤 가방을 내려놓고 구경하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모르는 건 다시 묻고 어리둥절하며 여기저기 구경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여행을 보내드리지 못한 게 미안했다. 누군가는 익숙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어설프다. 새로운 경험을 하며 여전히 설레기를 원하는 나처럼 아빠도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이끌고 싶었다.



아빠는 성산일출봉, 신비의 도로, 갈치구이, 흑돼지, 승마를 원했다. 사진까지 친히 보여주며 제주도는 이렇게 긴 갈치를 먹는다고 말했다. 블로그 광고가 많아서 그중에서도 진짜 찐 맛집을 찾고자 몇 번을 검색했다. 나 혼자 갔으면 근처에 있는 식당 아무 데나 갔을 텐데, 이런 세심한 계획은 ENFP인 내게 너무 어려웠다. 성산 + 내돈내산 + 갈치 키워드를 넣으며 겨우 성산일출봉 앞에 있는 갈치 전문점을 찾았다. 여기서 갈치를 먹고 바로 우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식사를 하는 중에 아빠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하게 된다면 매일 낚시를 가서 갈치를 잡고 싶다고 했다. 많이 잡히면 100마리에서 300마리 그 이상은 잡으니까. 동네에서 팔면 숙박비는 그냥 번다는 말도 빼지 않았다. 말을 쉽게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했다. 뭐든 쉬운 일은 없는데. 사장님께서는 초보자도 쉽게 잡는다며 아빠 편을 들어줬다. 아빠가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렇구나라고 반응을 해주면 되는데, 이런 말이 잘 안 나온다. 괜히 트집 잡고 싶어 진달까. 어디 가서 창피당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도 있고 쉽지 않은 세상살이를 쉽게 말하다가 큰코다칠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사장님께서 우도까지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셨는데, 이해하지 못해 지도 어플을 켰다. 돌고 돌아 성산항에 도착했다. 30분마다 배가 출발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수학여행  학생들이 많아 배가 지연됐다. 덕분에  시간을 놓쳐도   있었다. 짝수일과 홀수일에 따라 우도 투어 버스 방향이 달라진다. 티켓 2개를 구매하고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갔다. 바다가 너무 푸른색이고 예쁜데 사람도 많지 않아서 마음껏 감상할  있었다. 이런 나와 달리 아빠는 바다를 한번 훑고는 돌이 많은 쪽으로 갔다. 며칠 전에 동물의 농장 프로그램에서 개가 문어를 잡았다면서. 휴. 이 와중에 아빠 전화기는 계속 울렸다. “,  제주도야라고 말하는 말에는 웃음이 섞여있었다. 기분 좋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왜 동시에 생기는지 모르겠다. 하고수동을 여유롭게 보다가 시계를 보고 다급해졌다. 동문시장에서 구경하고 갈치 먹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겨 우도에 늦게 들어갔다. 원래 하고수동 - 비양도 - 검멀레 해변 - 우도봉 - 서빈백사 이렇게 보기로 했는데 검멀레랑 서빈백사를 포기했다.




비양도는 말만 들었지, 직접 와본  처음이었다. 캠핑하는 사람이 많았다.  위에 올라 바다와 주변을 한눈에 보기 좋았다. 봉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높고 손잡이가 없어서 계단을 잡으며 넘어지지 않게 올라갔다. 제주도 사진을 인화해서 아빠한테 선물할 생각에 아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아빠는 이번에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요청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얻은 사진은 없지만


사진을 여러 장 찍어도 한 장 건질까 말까 한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수십 번 셔터를 누르지만 아빠는 단 한 장만 찍는다. 나중에 보면 머리카락이 눈까지 올라갈 때 찍혀서 모자이크 처리된 기분이 들거나 눈을 감고 있어서 이상한 사진뿐이었다. 그걸 보여주면서 이게 뭐냐고 물으면 아빠는 박장대소했다. 15분 ~ 20분마다 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충 보고 빠르게 내려왔다. 우도봉에서 말을 타고 싶다는 아빠의 의견을 들어주고 싶었는데 시간을 보니 50분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님은 1시간 30분 소요되는데 왜 올라가냐고 했지만, 막차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오르막이 힘들었지만, 곧 승마장이 보였다.



10 정도 탑승하는데 2 50,000원이다.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지만,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시간에 좇기는 우리를 위해 말을 타고 뛰기도 했고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았다. 놀이기구 타는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웃고 난리 쳤다. 말은 사장님의 달리자, 걷자 라는 말에 맞게 속도를 맞췄다. 조금 즐기다가 마음이 불편했다. 체험은 좋은데 말을 학대하는 건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주변에 쉬고 있는 말을 보니 목줄 없이 풀을 먹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합리화했다. 인간은 역시 합리화의 동물인가.


저녁에 돈이랑에서 흑돼지를 먹었다. 어제 잡은 돼지라 덜 익혀도 부드럽고 맛있다고 했다. 오겹살을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해도 다양한 부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 구워주시기도 하니 편하기도 하고. 너무 배불러서 광치기 해변까지 산책했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눈이 절로 하늘로 갔는데 구름이 특이했다. 알고 보니 낚싯배의 불빛이 하늘에 반사돼서 막대기 모양의 구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구름이 흔치 않은데 날씨에 따라 오로라보다 예쁘다는 말도 많았다.



여행 코스에서 성산일출봉, 섭지코지는 뺄 수 없다. 예전에 제주도 두 달 살기 했을 때 성산에서 지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일출을 본 뒤 스텝이랑 섭지코지를 걷다가 저녁이 되면 일몰을 보곤 했는데 여전해서 좋았고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날이 좋아서 멀리서 한라산이 잘 보였다. 아빠는 이미 성산일출봉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내게 자꾸만 보라며 멋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좋은 건 공유하고 싶은 마음. 틈날 때마다 카메라를 켜고 아빠에게 포즈를 요청했다. 그만 찍으라면서 하나 둘 셋 하면 늘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계단을 많이 올라서인지 내려오자마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나도 모르게 힘이 빠져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빠는 웃으면서 바다와 암벽을 보라며 감탄했다. 나도 보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아.. 섭지코지는 가을이라 갈대밭이 많았다. 성산일출봉에 많은 감탄을 쏟아서인지 아빠는 바쁘다며 빨리 다음 코스로 가자고 했다. 참고로 여긴 승마 체험이 5천 원이다. 줄이 많아서 아쉽게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빠는 예전 신혼여행 때 패키지여행으로 왔다며 천지연 폭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여기도 수학여행 필수 코스라 학생이 많았지만, 사람 없는 틈을 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길이 좋지 않고 비포장 도로였다며 주변을 둘러보며 설명하기 바빴다. 천지연 폭포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외돌개와 쇠소깍이 있어 갔다. 바다는 성산, 외돌개, 쇠소깍이 제일 예쁜 것 같다. 너무 맑고 투명해서 바다 안이 보이기도 하고 너무 깊어서 나무색이랑 비슷한 색깔을 띠기도 하다. 시간이 늦어서 카약은 못 탔지만, 십원 빵은 맛있었다. 슬슬 집에 가려고 하자 날이 저물었다. 바다 뒤로 분홍빛이 맴돌았다.



한걸음 걷고 사진 찍고 두 걸음 걷고 사진 찍는 나를 기다려줬다. 원래의 아빠 라면 빨리 가자고 재촉했을 텐데. 역시 여행 오면 누구에게나 느긋한 여유가 생기나 보다. 집에 가기 전에 주변 시장에서 회와 흑돼지 족발, 귤을 사서 숙소로 갔다. 아빠는 야구를 보며 족발 한 입을 먹으며 내일은 어디를 갈 거냐고 물었다. 말해도 내일이면 또 물어볼 테지만, 성실하게 답했다. 그때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어, 나 제주도야.” 어린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익숙했던 여행지도 누구랑 왔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익숙했던 사람도 낯선 장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나에게 아빠는 그랬다. 묵묵하기만 했던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신난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여행하면 아침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고요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 듯한 기분을 좋아해서. 조식을 먹고 아빠산책을 나왔다. 바다를 보자마자 아빠는 문어를 잡겠다고 걸어갔고 나는 다리가 아파서 아빠를 뒤에서 지켜봤다. 문어가 없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어왔지만. 숙소에 월풀이 있어서 입욕제를 사서 아빠가 피로를   있게 도운  산책하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올레길이 연결되어 있어 걷는 사람이 종종 보였다


숙소 뒤로 산방산이 웅장하게 서있었다. 예전에 제주도에 책을 입고하러 갔다가 버스에서 산방산을 봤다. 너무 멋있어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봤다. 그래서 이번 코스에 꼭 넣고 싶었다. 바다와 낮은 건물 속에서 든든하게 자리한 산방산. 짐을 정리하고 산방산으로 갔다. 절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는 주로 산 안에 있어서 좋은 경치를 볼 수 있고 좋은 풀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일까 뭔가 좋다.



산방굴사에 올랐다. 천장에서 약수가 뚝뚝 떨어졌다.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세 모금 마셨다.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식힐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인도 여행 때가 생각났다. 버스 파업으로 계획에 없던 룸비니에 가게 됐고 일주일을 머무르면서 딱히 한 게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거나 산책하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게 전부였다. 그 시간이 좋았다.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던 여행이 평화로워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 그 뒤로 불교의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불경이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듣고 있으면 넋 놓게 된다. 일상에서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 멈추고 아무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명상은 생각을 멈추는 게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잠시 몸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단계라고 들었다. 배우지 않은 명상을 스스로 터득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짜이(인도식 밀크티)가 마시고 싶었다. 다행히 근처에 제비다방이 있었다. 아빠는 이상하다며 싫어할  뻔했지만, 고 싶었던 곳이라 욕심을 부려봤다. 짜이는 인도에서 마셨던 것만큼이나 맛있었다. 인도에서는 여행사에게 사기당했을  짜이를 처음 마셔봤다. 달달했다.  달달함에 속아 사기를 당했지만,  사기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생각에 혼자서 피식 웃었다. 짜이를 주문했는데 사장님은 밖에서 햇빛을 맞으며 고양이랑 놀고 계셨다. 아빠는 자꾸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주문이 제대로    같다고 했다. 나는 인도에서 자주 들었던 ‘조급해하지 마’라는 말이 생각나서 아빠한테 똑같이 말했다. ‘, 조급해하지 마.’ 아빠는 나까지 이상하게 쳐다봤다.



용머리 해안에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주상절리에 왔다. 큰고모의 추천 덕분이었다. 주상절리도 멋있었지만 야자수가 길게 줄지어 있어서 여행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빠는 여기서 사진 찍고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왔다고 거짓말해도 될 것 같다며 사진을 찍으라 했다. 아빠는 내가 특이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빠가 더 특이하다. 왜 저럴까.



환상의 숲.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숲 해설을 들으며 투어 하니 그냥 지나칠 법한 것들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다. 자연에서 삶을 배울 수 있고 깨달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런 삶의 지혜를 아빠와도 나누고 싶었다. 감탄하며 숲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틈 속에서 같이 서성이다가 집중력이 흐려지는 게 보였다. 


어제는 바다를 보고 오늘은 숲을 봤다. 완벽한 투어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아빠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사실 조금은 인정한다. 너무 장소만 나열했다. 다음엔 몇 시에 출발하고 몇 시간 머무를 수 있는지까지 계산해야겠다. 



아빠가 제주도에 가기 전부터 말했던 게 있다. 돌멩이를 굴리면 앞으로 가야 하는데 거꾸로 간다면서 거기가 어딘지 모르냐면서. 그게 뭔지 몰라서 검색창에 돌멩이 거꾸로를 계속 검색했었다. 그렇게 검색하니 나오지 않았는데 택시 기사님 덕분에 아빠가 말한 곳이 신비의 도로라는 걸 알게 됐다. 제주 공항 가는 길에 있어서 마지막 날로 코스를 짰다. 차를 정차해도 밑으로 내려간다. 신비의 도로 구간이 짧으니 비상등을 켜고 체험을 해야 한다. 너무 짧아서 허탈하면서도 신기해서 잠깐 웃다가 이호테우 해변으로 갔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해는 동그랗고 붉었다. 자꾸만 뒤를 보게 하는 힘이랄까.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많아서 해가 보이지 않았는데. 잘 가라고 인사해주는 건가.


집에 도착하자 아빠한테서 “고생했어”라는 문자가 왔다. 평소에 이런 말을 잘하지 않은 아빠라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 뿌듯했다. 다짐이라는 건 힘이 있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아빠의 짧고 힘 있는 문자를 보고 꼭 여행을 또 가자는 다짐을 했지만, 곧 잊어버리겠지. 사느게 바빠서.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자주 같이 여행 가진 못하더라도 종종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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