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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Nov 16. 2022

좋은 기분을 소비했던 대전 당일치기 여행

의도치 않게 대전으로 여행을 갔다. 갑자기 오게 된 만큼 여행 계획은 없었다. '대전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고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가깝고 정말 가볼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일단 유림공원. 하루 전에 국화축제를 해서 산책로에 국화가 많았다. 걸을 때마다 향도 나고 좋았다. 아침에 비올 듯 날씨가 흐려서 걱정했는데 공원에 있는 동안에는 푸른 하늘이 잠깐 나타났다. 정자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도 있고 조깅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축제를 정리하는 직원들도 있었는데 보니까 국화를 다 버리는 중이었다. 너무 아까웠다. 국화를 사기 위해 예산도 많이 썼을 텐데, 이걸 다시 사용할 방법은 없었을까. 나눠주거나. 훼손된 국화만 버린 걸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쉬웠다. 식물 회복실로 죽어가는 식물을 다시 살리는 직업도 있던데. 축제의 순간은 좋지만, 이런 이면을 보면 낭비가 심한 것 같기도 하다. 지속 가능한 축제는 없을까.


한밭수목원에 갔다. 대전은 노잼 도시이라고 한 것 같은데 주변에 산책할 곳이 많아서 그렇게 노잼까지는 아닌 듯하다. 벤치에 앉아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산책하는 사람도 곳곳에 보였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공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봤다. 주황색으로 물든 나무도 있었고 추위에 못 이겨 낙엽이 되어 바닥으로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도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절로 마음이 편안했다. 


성심당에 갔다. 다다르다 서점 바로 옆에 성심당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한가득 빵을 사서 나왔다. 성심당에 2번 정도 온 거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이야기가 퍼져 이렇게 한 공간에 자리 잡고 사람들을 끌어오는 힘이 강한 성심당. 브랜딩을 배우고 싶다.

지역 서점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 구매한 책을 보면 그때 여행을 떠났던 기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내 마음 등이 생각난다. 찍은 사진을 앨범에 옮기는 것처럼 책장에 타 지역에서 사 온 책으로 쌓일 때마다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달까. 대전 다다르다 서점에 갔다. 책이 너무 많아서 뭘 봐야 할지 몰랐지만, 요즘 소설에 꽂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설 코너에 갔다. 그리고 가운데 매대에서 독립출판 도서까지 골라서 두 권을 샀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가 내가 글 쓰는 사람임을 말했다. 그 뒤로 독립출판작가의 서러움과 유통의 어려움 등 심도 깊은 주제까지 이어졌다. 


사장님도 책을 읽는 사람의 연령대, 성별을 보면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으시는 마음이 보였다. 덕분에 대전서점대전을 알게 됐다. 이번 11월 12일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동네서점의 미래, 브랜드 강연, 지속 가능한 서점 생태계까지 한 번에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다. 다시 대전을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사장님께서는 주변 지도를 나눠주면서 서점과 맛집, 볼거리 등을 추천해 주셨다. 그중 문구류를 판매하고 브랜딩을 잘한다는 프렐류드에 왔다. 역시나 구경을 하면 할수록 글이 쓰고 싶어 졌고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꾸미고 싶어졌다. 한 곳에는 여행하면서 모은 지우개 전시까지 있다. 좋은 상품을 내 옆에 두고 싶은 마음에 볼펜이랑 형광펜을 구매했다. 다다르다 사장님 추천으로 알게 됐다고 하자 프렐류드 사장님도 인근에 있는 소품샵 목록을 주시면서 추천해 주셨다. 여기도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듯하다. 

집으로 가기 전, 대전역 근처에 있는 소제화실에 왔다. 카페거리라고 하는데 구경할 시간이 없어서 바로 앞에 있는 이곳에 왔다. 방으로 된 공간을 쓸 수 있고 공간이 협소하여 한 시간 정도 이용할 수 있다. 다다르다에서 구매한 책을 읽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 하루가 왜 이렇게 완벽한 거 같지. 의도하지 않았는데 명상하고 산책하면서 생각을 정리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 일기를 쓰고 책을 읽으니 뭔가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 노잼이 유잼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여행을 좋아했는데 어느새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 영향도 있었지만 일이 힘들어서 쉬는 날이면 집에서 뒹굴거리며 피로를 해소했다. 쉬는 날에도 여기저기 좋은 것들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었는데, 갑자기 씁쓸해졌다. 살다 보면 성향이야 바뀌겠지만. 좋아하는 걸 미룰 만큼 피로가 심했던가. 씁쓸한 마음은 잠깐. 귀찮아져서 침대에 누웠다. 글 쓰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었는데 글을 놓은지도 꽤 됐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소설 수업을 들으면서 계속 글을 쓰려고 했다. 좋아하는 걸 지키는 철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어째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일의 영향이 이렇게 컸던가. 좋아하는 일로 성취감도 느끼고 취미를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 순 없는 걸까. 휴. 쉬운 듯 쉽지 않은 현실. 현실이란 이유를 쓰고 싶지 않았는데, 체력을 키워야겠다. 우연히 떠나온 대구 덕분에 잊었던 마음이 하나둘 생각났다. 일을 그만두면서 예전의 나를 되찾기 위해 회복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또 여행을 떠나려나.


글 쓰면서 들었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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