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사과는 마음이 가벼워 보일까 봐 진심일 때만 하는데, 그게 지금인 것 같아. 미안해. 사실 운동하면서 알게 됐어. 내가 짝다리도 심하고 팔자걸음에 발도 끌면서 걷는다는 걸. 어쩐지 너를 볼 때마다 오른쪽 밑창이 유독 닳았더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괜히 눈치 보이네. 한쪽이 닳으면 결국 두 쪽을 잃을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 구매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어. 쉽고 버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아니, 쉽게 생각했던 거 맞아. 너를 습관처럼 신다 보니까 낡은 걸 뒤늦게 발견했어. 그땐 되돌리기 늦어 보였고.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세탁소도 잘 찾으며 관리해 준다는데 너는 게으른 주인 만나서 관리도 못 받으니 생이 더 짧네. 너도 오랫동안 땅을 밟는 걸 꿈꿨을 텐데.
나는 편애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근데 나 내로남불 심하더라. 신발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신고 다른 신발은 보지도 않아. 너네 집을 청소하다가 네 친구에게 곰팡이가 들어왔다는 걸 발견했어. 여름이면 환기도 시켜주고 수시로 봐주고 했었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네. 그렇게 겨울까지 왔어. 그래도 심한 건 아니라 물티슈로 닦아서 운동화 세탁을 맡겼어. 다행히 세탁소에 며칠 입원하더니 깨끗한 상태로 돌아왔더라고. 이런 걸 보면 오랫동안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은데, 그 다짐은 왜 금방 잊어버리는지. 한 신발만 좋아하고 나머지는 뒷전이라 신발을 신던 신지 않던 모두 잃는 기분이야. 근데 또 생각해 보면 더러워져도 밖에 나가는 걸 더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 어렵긴 하다.
아 맞다. 며칠 전에 엄지발가락 쪽 양말에 구멍 났었잖아. 양말을 벗으니까 발톱이 꽤 길었더라고. 네가 없었으면 구멍 났다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들켰을 거야. 감추고 싶었던 걸 대신 가려줘서 고마워. 회사에 도착하면 슬리퍼로 갈아 신는데, 이런 날이면 너만 찾게 돼. 이기적이지. 내가 원할 때만 찾고. 혹시 또 이런 날이 찾아온다면 그땐 내부로 숨 쉬지 말고 바깥공기 위주로 숨 쉬길 바랄게. 가끔 맡아보는데 무향이더라.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나는 물건을 조금 막 쓰는 편이야. 그래서 다른 신발에 비해 너의 수명이 길지 않은 거 같아. 이렇게 생각하니 너는 내가 험하지 않게 신길 바라며 좀 더 오래,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네. 너도 세탁소와 수선집을 오가며 검진과 치료를 받으면 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을까? 너는 365일 매일 나랑 나갔었잖아. 지하철을 놓칠까 봐 같이 뛰기도 하고 미끄러운 진흙을 밟지 않기 위해 같이 피하기도 하고. 혹시 이런 게 추억으로 자리했니? 아니면 닳아가는 밑창을 보며 스트레스받았니?? 운동화로 사는 삶은 어땠어? 요새 신발, 현수막, 가방 등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으니까 너도 신발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야.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최대한 조심히 걸을게. 그래도 사계절 내내 땅을 밟으며 너의 쓰임을 다했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오늘도 행복한 꿈 꾸고 내일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