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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an 15. 2023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원래 그랬던 건 아니야. 20대 중반까진 메모를 하지 않아도 나름 잘 기억해 내서 친구들이 나한테 많이 물어봤거든. 그거 언제였더라? 하면 그거 언제야. 그때 뭐 하지 않았어? 하면 그때 이거 했었어, 뭐든 척척 말해줬지. 근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런 기억들이 점점 흐려져. 생각하기 귀찮은 건지, 모든 걸 기억하기에 뇌 용량이 부족한 건지 잘 모르겠어. 매일이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본 것들, 어디선가 겪어본 것들 투성이 같아. 그래서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해. 


사실 난 자신을 엄청 괴롭히는 사람이야.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고, 오늘 해야 할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화를 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능력하다고 탓하면서 더 잘해내라고, 자꾸만 날 앞으로 밀어내거든. 그래서 뒤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던 거 같기도 하고. 별 볼일 없는 하루에 의미를 두니까 무언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되새김질을 하지 않았던 거 같아. 바쁘기도 했고. 


그러다가 기억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나 봐. 어제 뭐 먹었는지, 오늘 아침에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어. 조금만 더 생각하면 떠올릴 법한 것들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어.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달력에 메모하면 일정을 알려주는 알람과 지난날에 내가 뭘 했는지 알려주는 사진 앨범도 있으니까 더욱 필요성을 못 느꼈던 거 같아. 


며칠 전에 신호등을 건너려고 기다리다가 자전거 타는 아들과 그 옆에서 잡아주는 어머니를 봤어. 그 모습을 보는데 초등학교 때 놀다가 다리 다쳤던 날이 생각났어. 당분간 걸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친구네서 자전거를 빌려왔어. 매일 나를 자전거에 태워서는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회사를 다녔던 엄마는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게 번거로웠을 수도 있지만, 엄마랑 같이 학교를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던 거 같아. 엄마가 자전거를 낑낑 끄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어. 뭐가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예고도 없이 그때의 일이 떠오른 거 보면 기억이 꽤나 달콤했나 봐. 엄마한테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내가 다리를 다쳤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더라고. 


어렸을 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어.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뜨개질을 하셨는데, 하루는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내 목의 둘레를 재고 일주일 뒤에 나한테 목도리를 선물해 주셨어. 왜 나한테만 목도리를 주셨는지는 모르겠어. 내가 일기장에 무언가를 썼었나. 그건 기억이 안 나. 다만 친구들은 나를 질투했고 나는 어쩔 줄 몰라했지. 그래서 학교 가는 날에는 목도리를 하지 않았어. 선생님이 왜 목도리를 하지 않았냐고 묻자 내가 "엄마 목이 추워 보여서 엄마한테 빌려줬어요."라고 했던 게 생각 나. 어렸을 때지만 감사함과 동시에 불편함, 미안함이란 걸 알았던 게 아닐까. 


그 목도리는 어떻게 됐냐고? 동네 짜장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해피가 있었어. 시골집으로 입양되고 나서 멀지만 주말마다 거기를 찾아갔어. 오랜만에 갔더니 해피가 새끼를 낳은 거야. 새끼를 낳은 해피가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떨고 있는 게 안쓰러워서 그 목도리를 해피의 몸에 둘러줬어. 다음에 갔을 땐 할머니가 해피를 잃어버리셨더라고. 그 뒤론 시골집에 가지 않았고 그 목도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안 나. 


어렸을 때의 기억은 이 두 가지뿐이야.  시간이 뒤섞여서 뭐가 더 오래된 기억인지 모르겠고 특별한 사건 없이 기억하려고 하니까 기억이 더 안 나는 거 같기도 해. 


갑자기 내 어린 모습이 궁금해서 앨범을 열어봤어. 사진 속의 어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기억이 전혀 안 나. 내 옆에서 같이 사진 찍은 친구랑 매일 붙어 다녔다던데 그 애 이름도 모르겠고. 이렇게 쓰다 보니 또 하나 생각나네. 우리 집 뒷마당에서 머리를 자르던 기억. 의자에 앉아 보자기를 두르고 바가지를 머리에 쓰면 엄마가 그 라인에 따라 머리카락을 잘라줬어. 다들 이렇게 한다면서. 머리 모양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자르고 난 뒤에 배를 잡고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나. 아마도 서툰 솜씨로 자른 머리 모양이 무척 귀여웠나 봐. 이것도 나보단 엄마의 미소가 먼저 생각나서 언제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보니 너무 정겹다. 그때라서 가능했던 순간들 같아. 생각해 보니 이것도 한때잖아. 지금은 마당도 없고 바가지도 없고, 추위에 떠는 강아지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던 순수한 나도 없으니까. 슬픈 기억보다 따듯한 기억이 있었네. 기분 좋으면서 모든 오늘이 한때가 되어 언젠간 잊히고 사라질 거란 생각이 괜히 쓸쓸하다. 다시 예전처럼 하루를 되새겨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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