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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09. 2023

내가 나여서 싫은 순간

 아주 가끔, 내가 나여서 싫은 순간이 있다. 일을 벌이고 수습하지 못했을 때, 목표를 높게 설정해서 조급함은 커지고 이도저도 아닌 채 마무리될 때. 사실 내가 정한 목표이기 때문에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나를 괴롭히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지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일주일 내내 바쁜 일정을 소화하려 애썼다. 결국 몸이 고장 났다. 피로가 쌓여 쉬이 잠들지 못했고 무언갈 놓쳤을까 봐 쩔쩔매며 뜬눈으로 밤을 보내곤 했다. 잠들려는 뇌를 깨워 오늘 일과와 내일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나열한 뒤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면역력이 낮아져 몸도 차가워졌다. 그 틈을 타 감기가 달라붙었고 도무지 낫질 않아 피곤해도 잠을 잘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 걸까.


 올해, 친구들과 '그동안 모은 돈'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얼핏 들어도 내가 친구들보다 한참 적었다. 물론 돈을 아예 모으지 않은 건 아니다. 여행으로 목돈을 한 번에 썼을 뿐. 내가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 놀 때 친구들은 꾸준히 일을 했고 그 시간을 인정받아 한 단계 직급이 올라갔다. 서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했고 경제적인 건 그 결과일 뿐이다. 당연히 나는 돈이 없을 수밖에 없다. 대신 나는 짜릿한 여행을 경험했고 그 이야기를 묶어 독립출판으로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남은 게 없진 않다. 그 결과가 돈이라는 숫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알면서도 자꾸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그동안 놓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놓친 무언가가 뭔지도 모른 채. 늦은 만큼 많이 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조급함이 생기는 건 이런 이유뿐만은 아니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원하는 게 있으면 지금 당장 가져야 하고 상대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예상 답변을 먼저 꺼내기도 했다. 이런 성격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원하는 걸 성급히 구매했다가 다음 날 같은 상품을 세일하거나 더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기도 했고, 상대의 이야기에 대해 성급히 꺼낸 내 예상 답변은 늘 틀렸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기다리지 못할까.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어 요가도 다니고 유화 그리기, 나무 깎기 등 느긋한 취미를 하나씩 시도하기도 했다. 유화그림을 배울 때였다. 그리고 싶은 대상을 한 달 동안 그리기만 하면 되는 수업이었다. 첫날엔 스케치를 하고 둘째 날은 배경을 칠한 뒤 나머지 일정엔 꼼꼼하게 작업하는 것으로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었다. 빨리 색칠하고 싶어서 스케치를 대충 하려 했다. 선생님은 지우개를 가져와서 내가 가져온 사진과 스케치를 비교하며 설명해 줬다. "여기 보면 그림자가 사람 바로 아래 있고 엄청 작아요. 스케치한 걸 보면 다르죠? 최대한 자세히 보고 그려야 어색하지 않을 수 있어요."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나의 조급함은 그림에도 드러났다. 좋아서 하는 취미에도 강박관념이 생겨버렸다. 이런 조급함은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를 알고 싶다고 시도했던 일, 내 성격을 바꾸고 싶어서 시작했던 취미를 하나씩 떠올려 보면 재미를 느낀 듯하지만 어떤 걸 하든 깊이가 없었다. 그림? 한 달 동안 그렸고 색칠 공부하는 기분이라 재미있었어, 나무 깎기? 허리가 잠깐 아프고 손도 저리긴 한데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 재미있었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소감이랄까. '나 이거 해봤어.'라고 도장 찍는 기분이랄까.


 물론 '시도'의 측면으로 봤을 때 경험을 아예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순 있지만, 좋은 습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뭇결 따라 깎다 보면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 결을 이해해야 잘 깎겨.'처럼 그 분야를 꾸준히 경험했을 때 알 수 있는 시선을 많이 터득하고 싶다. 이렇게 다짐해도 또 조급함이 생기겠지. 그럼에도 심호흡하며 원하는 걸 다시 정리한 뒤 느긋해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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