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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17. 2023

선한 영향력

어릴 적 나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마워'라는 말을 들으면 종일 기분 좋아서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 적도 있다. 쓰레기를 주우면 되겠지, 폐지 줍는 할머니의 수레를 같이 끌어주면 되겠지, 고민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되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늘 뒷전이었고 친구가 먼저였다.


이런 마음을 이용한 친구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뒷담화하며 말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때라 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컸다.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들었다. 도와준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구나. 친절하고 착한 사람은 만만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다. 상대의 배려까지도 의심했다. 하지만 다행히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친구로 인해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친구로 인해 경계심이 풀어지기도 했다. 나는 다시 손을 내미는 즐거움을 찾았다. 단, 내 마음을 다쳐가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영화 <드림>을 봤다. 홈리스 축구 대회 지원이 끊기자 사무국장이 그 기업에 찾아가 지원을 다시 해달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걸 우리가 왜 해야 하냐고 묻자 사무국장은 '해야죠. 누군가는 해야죠.'라고 말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그 사람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결국 나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사람은 한 번쯤 무너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손을 내밀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특히 홈리스는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라 도움을 거절당하면 상실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사무국장의 진심에 울컥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홈리스가 많다. 도시락을 챙겨서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도 봤고 자고 있는 사람 옆에 침을 뱉는 사람도 봤다. 나 하나도 버거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우린 상대의 사연에 집중할 여력이 없을 때가 많다. 도와줘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기에 외면하면 불편한 마음이 생기고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합리화하며 도움을 뒤로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니 하루하루 겨우 살아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다치게 할 자격은 없다.


도움을 줄지 말지는 개인이 결정할 일이다. 여력에 따라 조금 도와줄 수 있고 마음만 응원할 수 있지만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모든 걸 설명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시선이 상대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한 청년이 홈리스에게 도시락을 주면서 말했다. ‘지금 드시면 따듯할 거예요.’ 힘내세요,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라는 말보다 훨씬 따듯하게 들렸다.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밥을 좀 더 맛있게 드시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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