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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24. 2023

눈 감고 걷는 세상

서비스 디자인, 공공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장애, 비장애, 노인 등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네이버 정의에 따르면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 간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여 총체적으로 과정과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20대 초반에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불편 없이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공공디자인을 공부하던 당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시각 장애인 한 분이 옆으로 지나갔다. 자신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맞는지 찾는 것 같았다. 다행히 유리문이 있어서 철길로 떨어질 위험은 적었지만 점자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다음엔 손에 들고 있던 스틱을 바닥에 두드리며 대기줄을 찾았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그날,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어떤지 살펴봤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 훼손된 점자가 많았고 사람이 많아 손잡이 점자를 찾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보드블록도 마찬가지였다. 끊어진 보드블록이 많았고 신호등 대기 선까지 가는 길이 위험해 보였다. 음성 없는 신호등도 있었고 몇 초 남았는지는 보이지만, 몇 초 남았는지 들리지 않아 건너야 할 타이밍을 찾기 어렵기도 했다. 장애 없는 사람의 기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알지 못했다. 사실 조금 놀랐던 건 내 주변에 장애인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다. 2023년 5월 기준, 등록장애인은 265만 3,000명(전년 대비 8,000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5.2%를 차지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 부분을 의식해서일까. 종종 시각 장애인을 볼 때면 시선이 간다. 한 번은 지하철 안에서 스틱을 들고 서계시던 사람이 있었다.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자 왕십리 가는 방향을 물어보셨다. 마침 가는 방향이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안내해 줬다. 한참을 서있었지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나뿐이라고 하셨다. 길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아무도 도움을 건네지 않았다는 말이 씁쓸했다.


지하철을 나와 신호등 앞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니 귀를 기울이게 됐고 차소리, 대화 나누는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무서웠다. 눈을 잠깐 감는 것도 겁이 나서 3초 만에 눈을 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에 용기가 필요해 보였다. 건너편 마트에 가는 것조차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내딛는 걸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5분의 거리가 누군가에겐 1시간의 거리가 될 수 있었다.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으니 모르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가 더 많다고 한다. 일을 하다가 혹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선 내가 아닌 모두의 시선으로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챙겨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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