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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un 06. 2023

되돌릴 수 없는 방귀

* 더러움 주의


가끔 내 인생이 시트콤 같을 때가 있다. 예전에 친구들과 섬에 들어가는 배를 탔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겠다고 모인 사람들 위로 갈매기가 하나둘 모였다. 새우깡을 보며 재빠르게 낚아채는 갈매기의 부리도 무섭지만, 머리 위에 똥을 쌀까 봐 걱정됐다. 갈매기를 피해 안쪽 의자에 앉았다. 봄바람이 불어 바람이 차지 않았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려도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곧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될놈될, 안놈안처럼 갈매기 똥이 바람을 타고 내 티셔츠로 떨어졌다. 검은색 옷을 입었던 터라 흰 똥을 닦아도 남아있었다. 똥 얘기로 글을 시작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똥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있지 않나, 항상 똥 얘기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더러운데, 이상하게 웃기달까. 아직도 똥을 좋아할 나이인가.


똥과 관련된 2가지 에피소드를 말하려 한다. 이사 온 집, 변기 수압이 좋지 않았다. 휴지를 많이 넣으면 막힌다는 집주인의 당부를 웃어넘겼다. 몇 년이 지나도 막히지 않았기에. 하지만 그 당부를 잊고 있던 어느 날, 저녁에 변기가 막혔다. 휴지의 양을 보고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귀찮아서 괜찮겠지, 하고 넘겼다. 변기 뚫는 법을 검색했다. '높은 위치에서 변기 구멍에 물을 부으면 압력에 의해 물이 내려간다.' 의자를 가져와 변기 옆에 두고 대야에 물을 담아 조준했다. 대야가 작아서일까. 실패했다. '그래도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변기를 비닐로 막고 물을 내린 다음, 비닐 밖으로 나오려는 물을 힘으로 누르면 된다.' 순간 망설여졌다. 만약 안에 있는 물이 넘치면 어떡하지? 심호흡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잡은 뒤 물을 내렸다. 다행히 물은 넘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물이 내려가지도 않았다. 한 시간 넘게 씨름하다 지쳐서 포기했다. 


저녁에 다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이 되자 신호가 왔다. 이놈의 소화능력. 변기 뚜껑을 열고 어제 해결하지 못한 흔적을 본 뒤 바로 닫았다. 아무리 길어도 5분. 그 이상은 타협이 불가했다. 시간 압박이 있으면 어떻게든 뇌가 돌아간다. 근처에 있는 복지센터가 떠올랐다. 모자를 쓰고 천천히 뛰다가 사람이 보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다. 그렇게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아 안심하며 고개를 들자, 안내문이 보였다. '똥금지 X' 망설였지만, 이미 늦었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물을 내리자마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간 김에 분리수거 봉투를 받아서 집으로 왔다. 아주머니의 시선이 살짝 따가웠지만, 살 것 같았다. 이 행복을 집에서도 누려야 했기에 아빠를 불렀다. "내가 똥 치우러 여기까지 와야 하냐?" 하면서 아빠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뚫어뻥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나가 물 내리는 소리와 손 씻는 소리가 들렸고 아빠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해결 됐어?"라고 묻는 말에 아빠는 "내가 별 짓을 다한다."라고 말했다. 손을 털면서 나오는 아빠가 너무 웃겼다. 이 에피소드를 친구에게 공유하면서 내게 똥(을 좋아하는) 이미지가 생겼다. 


그때쯤 연하를 만나고 있었다. 나의 작은 행동에 반응하며 챙겨주려고 애쓰던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설레었고 든든했고 귀여웠다.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마감 시간이 되면 조금 어두웠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그가 왔다. 아까 먹은 저녁 식사가 벌써 소화된 걸까. 예상치 못한 신호가 왔다. 똥까진 아니고 얕은 방귀 정도 되어 보였다. 다만 농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오늘도 내 옆에 달라붙으며 애교를 부리는 그를 떨어뜨리기엔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 가끔 바람이 불었다. 내 머리카락이 뒤로 흔들리는 거 보니 바람 방향도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쓰레기더미가 있으니 곧 좋은 타이밍이 나올 것 같았다. 


야식으로 뭐 먹을지 묻는 그의 말에 "글쎄, 떡볶이 어떨까?"라고 말했다. 괄약근에 서서히 힘이 풀며 모든 걸 내려놨을 때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 코너를 돌면 바람 방향도 바뀔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문과. 쓰레기를 치우셨는지 쓰레기도 별로 없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냄새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있던 그가 헛기침을 하며 살짝 나에게서 떨어졌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샹. 망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 뒤로 그에게서 뜨문뜨문 연락이 왔다. 이번 사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며칠 뒤에 헤어졌다. 좋은 타이밍이란 없는 걸까. 오히려 방귀를 텄으면 어땠을까. 그럼 더 우스운 꼴이 되었을까. 어색한 적막감이 돌던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생리현상이 나쁜 건 아닌데, 매력이 떨어질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단 생각에 조심스럽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랬으니 부끄럽고 창피했다. 


지금 생각하면 설레고 웃기고 아쉽지만 그 당시엔 실수한 나 자신이 짜증 났다. 잠깐 화장실 가겠다고 하면 될 것을. 지금까지도 연인에게 방귀를 튼 적이 없다. (친구 제외) 내가 똥 얘기에 아이처럼 웃는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편함에도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다고 더러운 얘기를 계속할 순 없으니. 그날의 순간이 꽤나 강렬했는지, 똥 하면 저녁에 막힌 변기와 그때 만난 연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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