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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내 멘털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날

by 매실 Aug 02. 2024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직전 회사의 업무는 편했지만, 성장할 기회가 없었다. '별로' 없었다기보다 정말 없었다. 성취감을 물론, 경력 없는 팀장 밑에서 어떤 걸 배우면 좋을지도 그려지지 않았다. 물론 시키는 일만 한다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다만 시키는 일은 매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내 젊은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무료함이 찾아왔다. 여기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당시의 난, 잦은 이직으로 이력서에 내세울 게 없을 때였다. 나를 만나기도 전에 이력서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번 회사는 무조건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출근이 지옥처럼 느껴졌을 때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한 친구는 내 가치관이 성장에 가까우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이직 준비 하기를 권했고, 다른 한 친구는 이 정도도 버텨지지 못한 내 멘털이 약하다며 버티라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이직을 선택했다. 결정을 내린 뒤 다시 이직 준비를 하는 내게 한 친구는 추진력이 좋다고 했고, 한 친구는 혀를 차며 너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답답함과 비웃음이 섞인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후자의 친구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출근 지옥이 시작되는 날, 곧 그만둘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럼에도 내 선택에 안심이 필요했다.


 다시 돌아와, 두 친구의 조언을 듣고 고민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봤다. 한 친구는 내 가치관에 초점을 맞췄고 다른 한 친구는 본인 가치관에 초점을 맞췄다. 당연히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만 본인 가치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특유의 이해 안 된다는 표정과 잘못된 선택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내린 선택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단순히 출근하기 싫다의 힘듦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어도 그 이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결론만 보고 나를 판단했다. ‘일을 그만두다니, 멘털 약해!’ 물론 결론이 중요할 때도 있다. 과정이 중요할 때도 있고. 그 친구에겐 과정이 중요하지 않을 뿐이다.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든 상관없었지만, 그게 뭐든 결과만 놓고 나를 판단하는 건 싫었다. 그렇다 보니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내 상황을 설명하기 바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을 빠르게 판단 내리는 친구였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예를 들면  '쟤는 딱 봐도 생각이 어려. 아부도 잘하잖아.' 이런 심리를 잘 파악한다는 그 친구의 말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특히 부정적인 면을 보고 판단 내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이 친구와의 대화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를 안 좋은 쪽으로 판단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동시에 연락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이 친구를 만나고 있다. 빠르게 결론 지으려는 것도 여전하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나 내 속을 다 꿰뚫고 있다는 눈빛과 '거짓말하지 마'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왔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아니라 나를 마음대로 판단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난, 이별을 했다. 집에 전남친의 추억이 많아서 가만히 앉아 쉬는 것도 힘들었다. 문득 생각날 때도 많았고 친구의 결혼 생활을 들을 때마다 전에 만난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실감했다. 하지만 연락을 하진 않았다. 잘해줄 자신이 없었고 엄마의 반대를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사랑이었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형태를 알게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왜 헤어졌는지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그 친구는 내 감정보다는 누가 먼저 이별을 말했는지. 상대는 널 다 정리했을 거고 널 좋아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려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오히려 그때, 이 친구의 멘털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른 연애를 한다. 남자들의 성향이 비슷할 순 있어도 결국엔 다 다르다. 그동안의 연애의 끝이 좋지 않았는데 최근 이별은 달랐다. 처음으로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헤어졌다. 놓아주는 거 자체가 사랑이었겠다는 생각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내가 만났던 사람까지 쉽게 판단하려고 했다. '그 남자는 널 다 잊었는데 넌 왜 혼자 여주처럼 있어? 그럴 필요 없어.' 라며 듯한 생각,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 상대를 깎아내려 자신이 잘 살고 있는 듯한 확신을 얻는 듯한 기분. 아마 이런 생각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그 기분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내 에너지를 쏟으며 변명하듯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 나쁨을 표현했을 텐데 말이다. 이런 감정도 귀찮은 건지, 그렇게 중요한 말이 아니라 그런 건지, 이런 감정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다. 뭐가 됐든 안 좋은 감정이 오래 남아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를 위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내 멘털이 오히려 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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