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벗어나 나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취미
현실에서 벗어나 나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취미
취향과 취미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닮았다. 설명하라고 하면 잠시 머뭇거릴 만큼. 내가 어떤 걸 했을 때 기분 좋아지는지 생각해봤다. 잘 쉴 수 있고, 현실에서 벗어나 나의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취미에 대해.
아빠는 낚시를 좋아한다. 낚시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보면 물고기가 잡히는 순간이라고 한다. 물고기가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데 낚싯대만 바라보면서 그 심심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의문이었다. 동생과 아빠와 함께 낚시를 가기로 했다. 아빠의 단골집에서 지렁이를 구매하고 많은 사람들 틈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았다. 낚시대를 꽂고 낚시 바늘에 지렁이를 꽂아 물속으로 던졌다. 그리고 기다렸다. 처음엔 이 기다림이 어색해 음악도 틀어보고 대화도 했지만 시끄러우면 물고기가 도망갈 수 있으니 적당한 목소리로 대화해야 했다. 우리 옆에 있던 아저씨는 10분 단위로 물고기를 잡았지만 우리 낚시 대는 조용했다. 우리에게 오려는 물고기를 아저씨가 잡았다며 자리를 탓했고 우린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옮긴 자리는 물고기가 잘 잡히지만 작은 물고기만 많았다. 운이 좋을 때 붕어가 나온다고 한다. 아빠에게 운이 좋은 내가 큰 물고기 잡아주겠다고 떵떵거렸다. 지렁이도 끼우지 못하는 나지만.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물속으로 낚싯대를 던졌다.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바늘이 바닷속으로 훅 들어갔다. 물고기가 지렁이를 먹었다는 것. 낚시 대를 바로 꺼냈지만 역시 작은 물고기다. 처음엔 너무 작아서 지렁이인 줄 알았다. 바로 살려주고 다음 물고기를 기다렸다. 낚시 바늘이 바닷속으로 살짝 들어갈 때 집중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바로 낚시 대를 꺼내면 물고기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타이밍을 보면서 낚시 대를 오른쪽으로 훅하고 당겨 바늘이 물고기에 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령을 알고 시도했을 때 여러 물고기를 놓쳤다. 타이밍을 놓치면 물고기와 지렁이 둘 다 없을 때도 있다.
물고기를 잡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낚시 몇 번 해봤다는 동생은 지렁이도 제대로 만질 줄 몰라 비닐봉지를 이용해 바늘을 꽂았고, 자리가 좋지 않다며 옮겨 다녔다. 시간이 지나 아빠가 먼저 집에 가자고 했다. 낚시가 뭐가 재미가 있냐며 이해하지 못했던 나와 동생은 조금만 더 있으면 잡힐 것 같으니 10분만 10분 만을 반복했다. 이런 상황이 웃음 나왔다. 낚시는 로또 같다. 안 잡히는 시간대라고 해도 조금만 있으면 잡힐 것 같은 마음. 사람들이 갈 시간임을 알고 분명 물고기가 나타날 거라고.
낚시 대를 바다에 던지는 순간 핸드폰과 책을 볼 수 없다. 물고기가 도망갈 수 있으니까. 계속 바늘만 보고 있어야 한다.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훅 하고 들어간 낚시 바늘을 보면서 “잡혔다”라고 나도 모르게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물고기라도. 옆에서 낚시하던 아저씨는 “그 정도 크기면 어망에 넣어도 빠져나갈 거야”라고 말하셨다. 다음엔 더 좋은 자리에서 낚시 바늘만 보며 큰 물고기를 잡아야겠다.
여행하다 보면 풍경이나 사람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남기는 사람을 보게 된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림을 그리면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자세히 보면서 기록한다. 지나가는 사람, 색감과 형태를 보며. 자세히 본다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한 자리에 앉아 한 곳만 몇 분 째 봤지만 어렵다. 물론 그 모습을 눈으로 보는 일은 좋았지만. 시선의 따가움 빼고. 그래도 한국이 아닌 여행지에서는 그 시선이 한결 가볍다. 해 지는 모습을 한참 보고 일몰 속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그들의 표정을 봤다. 웃고 있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서 사람을 관찰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싶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인물 드로잉 수업을 등록했다. 사람 눈썹, 표정, 눈매, 얼굴 형 등 자세히 보는 방법들을 배웠다.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림 진짜 못 그린다. 그래도 느낌이 있어" 무조건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닌 내 스타일의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이다. 유치원 때 다녔던 학원에서는 무조건 완벽하거나 똑같이 그리지 않으면 안 됐었는데. 몇 시간째 같은 모습만 그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눈과 입은 보통 이렇게 생겼지’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그 자체로 보는 일이 제일 어렵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더 잘 그리고 싶고 어떻게 하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자체를 그대로 옮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드로잉 수업이 끝나고 색연필을 구매했다. 어떤 느낌으로 그리고 싶은지에 따라 색연필의 역할도 다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상대방과 대화 나눌 때 그 사람의 표정을 보게 된다. 기분 좋을 때 표정, 화났을 때 표정. 색감에 집중하고 싶을 때 방문을 닫고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꺼낸다.
사진 찍는 일은 기록에 가까웠다. 그 장소에 같이 있었던 사람에 대한. 전공이 광고이기 때문에 자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라오스 여행 에세이 <이해하는지도> 책을 쓰면서 핸드폰이 아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인화하면서 핸드폰에 없던 따뜻한 감성, 무언가의 좋은 느낌에 반했다. 가방에 필름 카메라를 넣고 다닌다. 내가 본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산책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좋아한다. 20대 초반에 기록했던 사진을 20대 중반에 와서, 후반에서 보면 다른 느낌이다.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한다. 사진 속 소소한 일상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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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취미라고 할 만한 취미가 없다. 취미는 말 그대로 즐기기 위한 일이다. 내가 평소에 즐기고 있다고 할 만한 건 뭔가를 보는 것뿐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애니메이션이든. 보는 걸 좋아한다. 이것 또한 취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잠시라도 걱정, 고민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보는 걸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베틀’이었다. 옛날 옛적 옷을 만들 때 사용하던 물건. 요즘에는 컵 받침이나 모빌 같은 작은 소품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작은 베틀이 많이 있었다.
컵 받침을 만들기 위해 동영상을 보면서 날실을 연결하고 실의 좌우를 옮겨가며 모양을 만들었다. 한두 줄 실이 보일 땐 몰랐지만 반 정도 작업한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색을 선택하고, 실이 꼬여지는 걸 막기 위해 실의 방향까지 기억해야 한다. 컵받침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 좋았다. 며칠 걸릴 줄 알았던 컵 받침을 그 날 완성했다. 친구에게 취직 축하 기념으로 컵 받침을 만들어주겠다며 만드는 과정을 찍어 보내줬다. 기대하면서 좋아했던 친구는 완성된 컵 받침을 보며 첫 작품은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나에게 양보했다. 테이블 위에 실과 베틀을 올려놓고 음악을 틀었다.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웃으셨다. 진짜 이상한 거 많이 한다며. 이상한 걸 찾아서 한다는 건 좋은 것 같다. 누구나 취미 항목에 쓸 수 있는 독서, 영화감상, 피아노 등이 아니어서. 나와 맞는 취미를 찾아간다는 말인 것 같아서.
월간심플 10월 '취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