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것과 직접 일하는 것은
달라요.

<저는 늘 막내입니다> 1부

by 매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늘 다짐한다.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자" 하지만 그 다짐은 곧 무너져버린다. 지난번에 좋아하는 분야의 목록을 만들어서 겨우 괜찮은 회사를 찾았다. 시골 문화콘텐츠 만들기. 시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식당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일을 했다. 듣기만 해도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그만뒀을 때 다들 어떤 일을 했는지 묻다가 왜 그만두었는지 의아해하곤 했다.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 같아" 면접을 한 시간 반 동안 봤고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셨다. 스타트업인 만큼 복지는 좋지 않았지만, 20대 초반처럼 열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우선 내가 흥미롭게 느껴졌으니까. 이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글 쓰기와 기획하는 일에 있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상사는 시골을 연구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다른 회사의 콘텐츠를 만들어주기도 했다는 말을 들어보니 상사 밑에 있으면 금방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말들이 나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그 기대감은 사라졌다.


첫인상부터 삐그덕거렸다. 월요일 9시까지 출근이다. 출퇴근 시간 때문에 8시 40분에 도착했다. 작은 사무실에는 매니저 한 분이 있었다. 내가 오자마자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는 처음이어서 당황했다. 몇 분 지나자 다른 매니저가 출근했다. 원래 채용을 늦출 예정이어서 내가 쓸 책상과 컴퓨터가 없었다. 나를 고용하고 나서 바로 책상과 중고 컴퓨터를 구매해 주셨다. 세팅하지 않아서 다 같이 박스 안에 있는 책상을 꺼냈다. 그때 상사가 들어왔다. "책상 왔어?" 이 말이 끝나자 주말에 출근해서 책상 정리 하지, 왜 지금 하냐는 말을 이어갔다. 주말 출근이라니? 나는 당황했고, 다들 웃으면서 책상을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어서 어색했다. 나 빼고 다들 다나까를 사용했고, 퇴근시간에 퇴근하지 않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며칠 지나고 청주로 출장을 갔다. 여행사라 여행도 하면서 후기 글을 쓴다. 늘 원했던 일이었다. 첫 출장이라 설레는 마음이었지만, 사실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출근하고 일주일 지나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보통 감기 한 번 걸리면 회복하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 원래 병원은 잘 가지 않지만, 혹시 피해될까 봐 병원도 매일 갔고 링거를 맞으면서 빨리 나으려고 노력했다. 출장 당일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여러 서포터즈를 챙기며 돌아다녔다. 다행히 약을 먹으면 몇 시간은 기침이 덜 나왔다. 무사히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어째 감기가 더 심해졌다. 사무실에서 여전히 기침하는 나를 보고 상사는 말했다. "다음 주까지 감기 안 나으면 자동 퇴사야" 이력서 봐달라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너무 큰 상처였다. 누구보다도 빨리 낫고 싶었다. 노력한 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하고 출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픈 것에 대해 미안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으니 더 이상 미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했던 기대감까지 모두 사라지게 했다.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했고 모든 의욕까지 사라졌다. 자동 퇴사가 된다고 하면 나는 다시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근데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이 더 컸다. 이 마음을 표현하는 건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말하기 어렵다. 우선 화나고, 부당하게 느껴졌다. 몸 관리를 못 한 것에 대한 실수도 있었지만 내 일만큼은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혹시나 다른 직원들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회의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아픈 것에 화가 날 뿐이었다. 상사가 말했던 일주일이 지나도 감기는 낫지 않았다. 잘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니 감기가 나았다. 이제 감기로는 뭐라 할 일이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8시 50분에 도착하면 "왜 이렇게 늦게 오냐, 30분 전에는 와서 출근 준비를 해야지"라고 말했고 예시를 들 때마다 여성 속옷으로 비유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꼰대는 처음 만나봤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제일 막내이고 다들 참는 분위기여서 내가 주도해서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만둬야 할지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3개월이 됐다. 3개월이 되니 일도 익숙해졌고 판매 상품도 만들 수 있었다. 상사는 본인이 놓친 걸 내가 체크해 줄 수 있어서 좋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전에 했던 말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칭찬받은 것에 힘이 났다.


근데 이 칭찬의 힘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내가 칭찬받으면 상사는 나보다 6개월 먼저 일한 사람에게 쓴소리를 했다. 누군가가 잘하면 같이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을 내리 깎아서 칭찬인지 아닌지의 말들을 들어야 했다. 매번 당연시되는 야근과 반복되는 성희롱 발언에 결국 참지 못하고 그만둔다고 말했다. 퇴사 이유를 한 시간이나 설명했다. 여기서 쓰기도 민망한 말들도 많다. 일은 역시 호기심이 있다고 해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 괜찮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가 보다. 상사는 의도치 않게 상처받았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보다 "내가 했던 말들이 신고가 되나? 무튼" 이 말이 먼저였다. 계속 그만둘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만두면 이력서 쓰고 면접 봐야 하는 그 시간을 또 보내야 한다. 너무 괴로웠다. 그냥 참을까도 생각했었지만 저 말을 듣고 잘 그만뒀다고 생각했다. 매번 내가 다니는 회사마다 왜 이러냐며 한탄하지만, 친구는 다들 그런 말들과 모욕을 참으면서 산다고 했다. 그 참는 일이 생계와 연결되어 어쩔 수 없이 참는 사람이 많다고. 혹여나 그 모욕을 참지 못하고 그만두더라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불안과 막막함은 있었지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내 자존심까지 상해가며 억지로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다시 뭐 먹고살지 고민해야 한다. 이 막막함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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