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막내입니다> 1부
진지하게 고민했다.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까 이번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잘하는 일이라 하면 괜히 소심해진다. 잘하는 여부는 측정하기 어려우니까. 이 정도로도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심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괜히 작아지기도 한다. "잘하는 게 이렇게 없구나" 많은 생각 끝에 바리스타가 떠올랐다. 20살 때부터 카페 일을 해왔고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고 자격증도 있다. 예전에 했던 일이라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엔 용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이젠 내 생계를 책임지는 업으로 생각하며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다.
여러 카페를 지원했고 그중 핸드드립 교육해 주는 카페를 선택했다. "그동안 했던 일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이번엔 잘 버텨보려 했다. 어느 곳이든 그전에 다니던 곳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 다짐 하나로 서울로 이사 왔다. 다녀보고 정해도 늦지 않지만, 일의 안정감이 필요하기도 했고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출근 첫날. 매니저는 커피를 만들어주셨고 카페 특징과 꼭 지켜야 할 사항과 규칙을 알려주셨다. 커피는 맛있었다. 이런 커피를 나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급 설레었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두 직원을 보니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친절할 것 같았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매장 내에서는 선배님으로 호칭을 통일한다. 난 매장 분위기를 살피며 설거지하고 선배 보조로 일을 도왔다. 내가 설거지하고 있을 때마다 출근하는 선배들은 나한테 언제 입사했는지와 함께 이름을 말했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름까지 외워야 하니 머리가 더 멍했다. 선배들은 "커피 마실래요?" 하면서 핸드드립을 내려줬다. 힘들어도 이 커피 한 잔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속없이. 일이란 게 좋은 부분이 있는 만큼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접시를 닦고 있는데 내 팔을 툭하고 치면서 "저거 먼저 해주세요."라고 하거나 나를 빼고 음료를 나눠 마시는 선배들도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직원에게 귓속말로 "레모네이드 마실래?" 하면서까지. 눈치 없지 않은 이상 신입인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게 보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스케줄은 보통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랑 배정됐다. 스케줄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였다. 일하는 시간은 보통 9시간이나 10시간인데, 그 긴 시간 동안 이 사람들이랑 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 결국 매니저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고 싶었다. 선배들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매니저는 나보다 그 선배들이랑 훨씬 친하니까. 그래도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매니저는 “네가 표정이 없어서 선배들이 다가오지 않을 걸 수도 있어. 그러니 네가 먼저 다가가 봐”라고 말해주셨다. 설거지할 때 무표정하게 일할 때가 있는데 무표정하게 있지 말고 웃으면서 하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그 말에 의식하며 미소 지으면서 일했다. 한 선배가 왜 웃냐며 웃지 말고 일이나 하라고 했지만. 어제 본 드라마나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 네"라는 단답형 대답이 끝이었다. 내가 다른 일을 할 때마다 뒤에서 쑥덕거리는 게 보였다. 치사했다. 학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왜 그럴까. 그래도 친해지려는 노력도 하고 쉬지 않고 일했는데. 알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답답함인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반응인지 모르겠다. 다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고 이런 사람이 있는 반면 저런 사람도 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그 시간을 참아왔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지속되니 더는 다니고 싶지 않았다. 애써 웃으며 일할 자신이 없었다.
나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선배랑 회사 OT에 참여했다. 선배는 나한테 스트레스 주는 선배들 때문에 한 달에 한 명씩 신입이 바뀐다고 했다. 단순히 내가 싫어서 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됐고 동시에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언짢았다. 나와 그 선배들 스케줄이 겹치면 그때부터 스트레스받기 시작했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미리 예상하면서. 결국 그만둔다고 말했다. 일하는 내내 불안하고 같이 일할 시간을 상상하며 괴롭고 싶지 않았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선배 역시 그만뒀다. 아무리 커피를 좋아해도 이런 환경에서는 즐겁게 일하기 힘들 것 같았고, 다른 곳에서 커피 배우면 되는데 굳이 이런 꼴 저런 꼴 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 생각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카페 일을 그만두려 결심했을 때부터 이력서를 썼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했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커피를 선택했다. 이런 고민이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나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좋아하고 잘하는 여부의 우선순위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마지막으로 내가 계속하고 싶었던 에디터를 지원해 보자.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면접은 잘 봤다. 내가 하는 말들에 반응이 좋았고 내 말에 많은 공감을 해주셨다. 하지만 면접 보는 동시에 여기도 다른 곳이랑 별반 다르지 않을까 봐 기운 빠졌다. 일자리는 많은 것 같은데, 열심히 일하고 싶은 회사는 많지 않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쯤 되니 일하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했다. 일 할 때 지치는 경우도 많은데 나와 맞는 직장 하나 찾기도 이렇게 힘들다니.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좋은 직장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난 직업운이 너무 없다. 아홉수라 그런가. 만 29세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