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악화? 직장에서 잘렸어요

<저는 늘 막내입니다> 1부

by 매실

출근 첫날,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오히려 한숨 나왔다. 기대하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회사 문을 열었다. 다들 나를 낯선 눈으로 쳐다보며 내 자리를 안내해 줬다. 역시 출근 첫날은 어색한 공기가 있어야지. 갈 곳 잃은 눈동자로 직원들을 쳐다봤다. 왜 이렇게 빨리 왔는지 살짝 후회하면서 컴퓨터를 켰다. 다행히 어색한 공기를 깨줄 음악이 들렸다. 한 직원이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음악을 켠 것. 음악 때문에 어색함이 줄었고, 근무환경도 자유로워 보였다. 마침 두 이사가 왔고 작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각자 자신을 소개했다. 개성이 다 뚜렷해 보였다. 머리스타일부터 옷 스타일과 말투까지. 그 속에서 난 너무 평범했다. 그들의 아우라에 조금 기가 죽었다. 이상하게 요새 자꾸만 작아진다. 계속되는 직장 실패로 인한 작아짐인가? 벌써부터 기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 때문 인 것 같다. 회사 근처에 맛집이 없다고 했다. 결국 출근 첫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맛이 특출 나다고 했는데 다른 햄버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햄버거가 제일 맛있을 정도라면 앞으로 내 점심의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점심 먹고 카페에 갔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 반이다. 덕분에 밥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만큼 여유롭게 쉴 수 있었다. 그 장점을 잘 이용했다. 피곤하면 빨리 밥 먹고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고 예쁘다는 카페를 다니면서 카페 탐방도 했으니까. 나보다 일주일 먼저 들어온 직원이 있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이렇게 자유로운 회사는 처음이라며 칭찬했다. 1년 근무한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 말들이 이 회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난 에디터로 매일 글을 썼고 상품 소개 글을 작성했다. 기획하는 일까지 맡아서 했다. 회사에선 사람을 키우려 하는 것 같았다. 어려웠지만 여기서 일하다 보면 기획부터 글까지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쏟아져서 어렵기도 했지만.


그러다 팀장이 회사를 그만뒀다. 사실 그전부터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불안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는지 혼자서만 한숨 쉬는 듯한 느낌이랄까. 팀장이 나가면서 이사는 더 까다로워졌다. 실제 모습을 보게 된 걸 수도 있고. 전체 회의가 있으면 주로 팀장이 말했는데 이젠 내가 그 말까지 해야 해서 예전보다 더 버거워졌다. 회사 적응도 해야 하고 에디터로 처음 일하는 거라 공부와 여러 시행착오도 필요하고 거기에 여러 사업까지 담당해야 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과정으로 일을 진행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으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회사는 회사이기 때문에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 과정을 버텨내야 하고 개인 시간을 사용하면서 공부해야 하고 담당한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너무 현실적이다. 이사는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 했다. 그래서 물어보면 약간의 무시와 답답해하는 말투로 말했다. 잘 모르겠어서 다시 물어보면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거라 말했고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일해야 했다. 더 물어보면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뭐라는 거야" 사실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내가 맞춰야 하고 맞추지 못했으니까 자꾸 답답해하고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이사가 말한 대로 수정하면 다음날에 말을 바꾸기도 했다. "간단하게 하면 돼. 이거 없애고 이것도 없애고" 그렇게 없애라고 해서 없앤 뒤에 회의를 요청하면 이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이 말을 바꾼다는 걸. 점점 물어보는 게 겁났다. 물어볼 때마다 반복된 말을 30분에서 한 시간은 들어야 했다. 듣기만 해도 지쳤다. 다른 이사가 내 글을 잘 썼다고 해도 그 이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도 책 만들기랑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만 5번은 들은 것 같다. 그럴 때 역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를 인정해 줘. 넌 나보다 아래야. 너 진짜 안 되겠다의 눈빛과 말들로 나를 대하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왜 팀장이 4개월 만에 그만뒀는지 안다고 해야 할까.


2개월 되는 날에 이사가 나를 불렀다. 적자가 회복되지 않아서 고용을 취소해야겠다는 말이었다. 미안하다고 말은 하는데 미안하지 않아 보였다. 원래부터 적자는 있었지만 에디터가 오면 달라질 줄 알았다고 했다. 나한테 적자는 신경 쓰지 말고 유입만 고민하라고 했으면서. 두 달안에 효과가 있길 바랄 거면 경력자를 뽑지 왜 신입을 뽑았을까. 어이없어서 그 자리에서 웃었다. 한 달 동안 일하면서 면접 봐야 하는 날이 있으면 배려해 주겠다고 이사는 말했다. 며칠 뒤 다른 직원들이랑 회식을 했다. 그때 이사가 나한테 한 말을 전했고, 이번 달까지 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직원들과 나눈 대화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선 나와 같은 말을 들은 직원이 있었고 일주일 먼저 들어온 직원도 요새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필요한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조만간 자신에게 고용 취소를 말할 것 같다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우습게 아는 게. 그날 이후로 우린 점심시간마다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더 근무해 줄 순 없냐고 나를 붙잡은 경우는 있어도 널 잘라야 한다는 말은 처음이라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씩 이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건 다 직원들 덕분이다. 이 사실을 너무 덤덤하게 받아들였고 현실적으로 기술을 배울 생각도 했다. 미련이 남기보다 앞날을 생각했다. 동시에 한숨을 쉴 때도 있었지만 어이없는 현실에 같이 웃기도 했다. 짧게 회의하고 남은 시간에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다며 또다시 막막한 앞날을 고민했다. 답 없는 고민을 함께 하며 머쓱한 웃음을 짓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인데. 그냥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과 동시에 직장을 갖지 말자고 다짐했다. 생각해 보면 꼭 직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있고 경력 없이 나이만 차면 다들 날 뽑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직장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자꾸 상처받다 보니 어느새 지쳤고, 다시 이력서 쓰고 면접 볼 자신이 없어졌다. 조금 쉬고 싶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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