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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Nov 14. 2019

가난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바쁘게 살아온 탓에 어릴 적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많지 않은 기억 중에서도 생각나는 몇 가지 일이 있다. 그중 하나는 가난이다. 초등학교 때 작은 방 2개에 아빠 엄마 나 동생이 살았다. 방이 좁아서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도 들릴 정도였다. 엄마 아빠 방에선 주로 한숨과 생활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는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다만 의도치 않게 들었던 걱정에 눈치 보였다. 다들 버스 탈 때 교통비 몇 백 원 아끼기 위해 걸어 다닐 정도로. "다들 학원 가는데, 너는 학원 안 다녀도 돼?" 내가 고등학교 때 엄마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수업으로도 충분해" 엄마는 오히려 그런 내가 눈치 보였던 것 같다.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감추고 있는 말을 털어놓지 않았고, 계속 감정을 숨기며 괜찮은 척했다. 다른 친구들은 유행이라며 쉽게 구매하는 것도, 유행은 곧 끝난다며 따라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앨범을 보면 촌스러운 과거의 내가 있다. 예쁜 옷을 입고 싶어도 좀 더 저렴하고, 편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었다. 그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지금 보면 내가 너무 안타깝다.


그러다 20살이 됐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보다 내가 돈 벌 수 있다는 것이 더 신났다. "나 이제 어른이니까 핸드폰이랑 교통비는 다 내가 벌게!" 그 말을 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알아봤다. 처음 카페에서 근무하면서 친한 언니가 생겼고, 해가 지날 때마다 동생도 생겼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29살이 됐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그 사이에 많은 이력서를 썼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일을 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을 하기도 했고,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람과 소통하면서 상처 받았고, 사람의 말 한마디로 위로받았다. 오히려 일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은 직장을 위해 서울로 이사 왔다. 매달 비싼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있다. 그렇게 줄곧 나를 따라오던 돈에서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왜 항상 돈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지 가끔 화날 때도 있다. 나도 예쁘게 화장하고, 비싸지만 예쁜 옷도 사 입고 싶고, 매일 놀러 가고 싶다. 그런 내 생활에 불만족하고 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넌 독립심이 강한 거 같아. 부러워" 매번 내가 속으로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다. 처음으로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교 다니면서 취업계 내고 일했다. 일이 끝나면 학교 과제를 했다. 그렇게 일과 공부만 반복해온 내 생활이 부럽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친구는 취업이 되지 않을 때도 집에만 있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때도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꾸준히 일을 하는 내 모습에서 감탄했다고 했다. 친구 덕분에 알았다. 고단하다고만 생각했던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걸. 내가 친구 삶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는 것처럼 다른 친구도 내 삶을 부러워했다. 난 가난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며 성장해왔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님의 걱정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무시하지 않았고, 부모님에게 용돈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결국 내 선택들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끔은 돈 걱정하는 나를 바보처럼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힘든 때도 있었지만,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내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살아가려 애썼을 거다. 어쩌면 내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궁금하다. 만약 내가 가난을 무시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돈에 미련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상상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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