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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Oct 11. 2019

“우리 빼고 다 소야”

친구와 함께 이사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다. 건너편 식당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 집 근처에도 맛집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곧 외식하자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식당에 올 수 있었다. 돼지와 소곱창을 판매하는 작은 식당이었다. 대기번호 2번을 받고, 창문으로 곱창먹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복장을 보니 회사 업무를 마치고 온 듯했다.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오늘 있었던 업무와 그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약 30분은 기다리니 한 팀이 나왔다. 우리 앞사람이 대기를 포기하여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직원이 우리를 향해 밝게 웃으며 뛰어왔다. “식사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우린 메뉴 가격을 보고 말했다. “돼지 2인분이요” 가격차이가 2배 이상 나서 당연히 돼지로 주문했다. 테이블 의자에 앉아 곱창을 기다렸고, 이미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테이블을 힐끔 쳐다봤다.


우리 테이블 빼고는 다 소곱창이었다. 우리 테이블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빼고 다 소야” 돼지를 먹는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우린 조금 작아졌다.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면 당연히 소를 먹었을 거라며 민망함을 가리기 위해 여러 말을 내뱉었다. 우린 언제쯤이면 돈 걱정 없이 소곱창을 당당히 주문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곧은 아니겠지? 늘 없는 게 돈이었으니까. 잠시 현실을 씁쓸해하며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이 씁쓸함을 소주로 덮어버리자. 돼지곱창에서 약간의 돼지 냄새가 났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우리도 옆 테이블처럼 각자의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고, 문득 떠오른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 술잔을 부딪혔다. 그래 돼지면 어떻고, 소면 어때. 같이 앉아서 밥 먹고 나눌 대화가 있으면 됐지. 그래도 언젠간 돼지 말고 소곱창을 꼭 여기서 먹자며 다짐하고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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