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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Nov 28. 2019

내가 만든 덫에 걸렸다

작은 덫에 걸렸다. 처음엔 느슨했는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 덫은 나를 더 세게 조였다. 발이 묶여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덫을 자를 가위도 찾을 수 없었다. 풀면 풀수록 더 단단해졌다.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도 없었다. 작은 방에 나 혼자 있었다. 덫에만 집중하느라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온통 흰 벽을 보니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럴수록 더 벗어나고 싶었고, 몸부림은 더 심해졌다. 발목이 빨갛게 부어올라 상처가 났다. 아팠다. 하지만 피나는 것보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게 더 무서웠다.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두커니 서서 내 발에 묶인 덫을 봤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버린다고 생각만 하고, 버리지 않았던 끈이었다. 나는 내가 만든 덫에 빠졌던 거였다. 무게도 가볍고, 너무 얇아서 보이지도 않은 이 끈이 이렇게 내 발을 묶을 줄 상상도 못 했다. 허망했다. 고작 이 작은 끈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고, 점 점 기운이 빠졌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몸을 움츠렸고 몸의 온기를 모았다. 얼굴과 발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발목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플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내 발이 안쓰러웠다. 손으로 발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러다 끈의 시작점을 발견했다. 나는 천천히 끈을 풀기 시작했다. 상처를 두껍게 감싸고 있었던 흰 끈과 상처 때문에 빨개진 끈이 점점 더 길어졌고, 마침내 끈이 다 풀렸다. 오랜 시간 상처를 방치했기 때문에 진물이 나왔다. 진물을 닦아낼 시간이 없었다. 난 서툴러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나 보다. 내 앞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겨우 한 개의 방에서 빠져나왔던 거였다. 조심스러워졌다. 또다시 내가 만든 덫에 걸리지 않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천천히 걸었다. 갑자기 발목의 상처가 아팠다. 이 방에서 벗어나도 또 다른 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아픔을 견디고 계속 걸었다. 조금 무리한 탓일까 상처에 덧이 났다. 상처를 닦아줄 약과 붕대가 없어 입술을 깨물며 그 쓰라림을 참았다. 어찌나 아팠는지 꽉 깨문 입술에도 피가 났다. 그 피를 닦을 휴지 한 장 없었다. 목이 바삭 말랐다. 침을 모아 한번에 삼켜도 여전히 갈증이 났다. 물이 너무 절실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고, 여전히 흰 방과 끊임없는 문 뿐이었다. 상처와 갈증을 참아내며 문 앞에 섰지만, 난 문을 열 수 없었다. 이 문을 열었을 때도 다른 문이 나올까 봐 무서웠다. 나는 문을 열지 말지 고민하다 눈을 떴다.  


꿈이었다. 다행이었다. 꿈인 줄 알았으면 헤매기보다 방에서 자고 일어날걸. 많이 걸은 탓에 꿈에서 느꼈던 피로도와 두려움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너무 피곤했다. 쉬고 싶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누워 있었다. 고단한 몸을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지 이미 꿈속에서 경험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남은 에너지를 지켰다. 이 에너지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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