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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Dec 26. 2019

내 안에 ‘나’가 산다

내 안에 '나'가 산다. 얼굴만 같을 뿐이지 내 생각을 읽는 걸 넘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먼 앞날을 예측하여 내 선택을 돕거나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나'때문에 선택에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항상 '나'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 마치 직장 상사 같기도 하다. 이런 '나'가 요새 말썽을 부리고 있다. 예전엔 내 제안을 논리적으로 거절하곤 했는데, 이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내 판단을 흐린다. 이상해진 '나'때문에 내 안에서 다른 자아가 튀어나올 때가 많아졌다. 잘 먹던 밥도 며칠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친구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기도 하면서. '나'때문에 속 썩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직장 상사도 능력 있는 사람이 있고, 직원들을 괴롭히는 상사도 있는데, 어쩌면 '나'는 후자일지도 모르겠다.


면역력이 떨어진 '나'때문에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왜 우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울고 있었다. 나는 '나'와 대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대화마저 거부하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회사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내 표정은 없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마자 웃는 얼굴로 변했다. 좋은 아침이라며 사람들을 향해 반갑게 웃고 있었다. 하루를 연기하는 배우처럼 '나'는 기계적으로 웃으려 했고,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없었던 입맛을 찾아 맛있다며 입속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양치하러 화장실에 가자마자 다시 표정이 변했다. '나'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도대체 왜 갑자기 표정이 변한 걸까. 그때부터 나는 '나'를 눈치 보게 됐다.


일 끝나고 하나둘 켜지는 골목 가로등 사이로 걸어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렸고, 어두운 방에 센서등만 내 주변을 밝혀줬다. 현관문 스프링 때문에 내가 닫지 않아도 문이 닫쳤고, 동시에 센서등이 꺼졌다. 닫히는 문틈으로 밖에 있던 어둠이 들어온 듯 갑자기 공허해졌다. 불 꺼진 방을 터덜터덜 걸어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옷 갈아입을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토요일이어서 다행이었다. 계속 움츠려 있었을 뿐인데 벌써 아침이 됐다. 일어날 순 있지만, '나'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행동을 이끌 '나'가 고장 났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에 선택에 따랐다.


그때 현관문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별 거 아닌 소리이길 바라면서 현관문을 쳐다봤다. 괜한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소리는 잠잠해졌다. 이번엔 터덜터덜, 계단 올라가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면 반대쪽 현관문이 닿을 정도로 좁은 복도라 작은 소리에도 크게 울려 퍼졌다. 문밖에서 나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의 소음이 무섭게 느껴졌다. 집이 편하지 않았다. 거울을 보며 뻗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검은 추리닝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카페로 들어가 음료를 주문했다. 15개의 테이블 중 2개의 테이블만 남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고, 그 사람들로 인해 매장이 시끌벅적했다. 음료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오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들 누군가와 함께 마주 앉아 대화를 주고 받았다. 말하다가 잠깐 정적이 찾아올 때나 마른 입을 적시기 위해 음료를 마셨다. 나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었다. 목마르지 않았다. 이번엔 지하철 역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운동복 입고 뛰는 사람, 자전거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음악을 크게 틀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듣는 것과 걷는 거 외에 할 게 없었다. 벌써 저녁이 됐네. 어두운 밤하늘에 내 한숨 섞인 입김이 하늘로 올라갔다 사라졌다.


의미 없이 반복적인 하루들을 보냈다. 나가고 싶었던 건 아닌데, 주변이 조용할수록 찾아오는 숨 막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무료함에 무료함이 더해지고, 공허함에 공허함이 더 해지지 않으려 부지런하게 외출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다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별로 한 게 없어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어김없이 다음날이 왔다. 매번 가면을 쓰고, 엘리베이터 속 무표정의 '나'를 확인한 뒤 밝은 얼굴로 만들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모든 게 별 볼일 없어 보이고, 볼품없이 느껴질까. 매일 밤마다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걷기만 했다. 여전히 음악을 들으며 걷는 일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게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무기력한 지,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한지, 왜 이렇게 모든 게 귀찮은지. 처음엔 답을 내지 못하고 끊임없는 질문만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새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내 일상이 무료해서 그런 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엔 무료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걸었던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갔다. 작은 독서모임을 등록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책 속 문구와 자신의 삶을 엮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 얼굴은 진짜 얼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가면을 벗어냈다. 억지로 웃지 않고, 즐거워서 웃을 때가 많아졌다. 어둠보다 밝음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이 지났다. 난 조심스럽게 '나'에게 대화를 걸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을 꺼냈다. "배고프다" 나는 배가 고팠다. '나'가 판단력을 잃었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생각의 능력이 떨어진 것임이 틀림없다. 괜한 말을 꺼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쌀을 씻기 시작했다. 내가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걸 알았던 걸까. 조용히 나를 지켜보면서 '나'도 내가 안타까웠던 걸까. '나'는 나의 배고픔을 알아주고, 같이 밥을 천천히 먹었다. 밥이 너무 맛있었다. 원래 이렇게 밥이 맛있었나. 잊었던 입맛이 하나씩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공기를 더 먹으면서 활력을 찾아갔다.  


나는 너무 무리하여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 나는 '나'와 나를 동시에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보호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한동안 나는 '나'가 그리고 내 몸이 너무 낯설었다. 그 낯섦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만큼은 알아줬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계속 무시했다. 단순히 별나다고만 생각했고, 금방 지나갈 감정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미안했다. 나는 점차 나아가려고 노력했다. 단지 인정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 지금은 가짜 보호막을 걷어내고 진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린 조금씩 회복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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