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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08. 2020

둘이 살다 혼자 남겨진 집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어렵다. 좋아하는 게 뭔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 대상을 찾기 위해 시간 앞에서 나와 타협해야 하고, 부모님을 포함하여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삶도 있다며 설명해야 한다. 가끔 내가 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 조차도 자신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분명한 이유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 지점에서 매일 부모님과 싸웠고, 점점 지쳐갔다. 결국 난 이사를 택했다. 잔소리로부터 벗어나니 좋았지만, 이제 월세를 벌어야 했다.


회사를 퇴사했다. 회피하고자 선택했던 회사인지라 즐겁지 않았고, 무엇보다 동료 관계가 적응하기 어려웠다. 사람이 한 달꼴로 바뀐다고 하니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일을 그만뒀다. 수입이 생길 곳은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더 막막해졌다. 첫 번째 관문이 끝나면 더 센 강도로 다음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다행히 다른 곳에 바로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경영악화로 일을 그만뒀다. 그러자 곧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뭘 해도 안 될 것만 같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소리 없이 울었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진 것에 대한 불안이 시작되자, 무기력함이 더해져 몸은 더 무거워졌다. 당장 생활비는 필요했기 때문에 일은 계속 알아봐야 했지만, 부당함을 또다시 겪을까 봐 걱정하며 핸드폰을 끄고 켜기를 반복했다. 내 의지와 달리 시간을 무심하게도 계속 흘렀다.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선택했고, 이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자고 다짐했다. 이런 반복적인 생활을 1년이나 했다.


만약 혼자였다면 잘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겐 서울로 함께 이사 온 친구가 있었다. 비록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늦게 귀가하는 날도 있었지만, "나왔어"라고 말하며 올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친구와 때로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때론 말없이 잠들곤 했다. 내가 서울생활에 팍팍함을 느끼는 것처럼 친구도 만만치 않은 생활을 이어갔다. 다음날 출근해야 했지만, 새벽 3시까지 대화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피곤했던 적도 있었다. 대화는 주로 웃긴 일, 씁쓸한 일, 앞으로 뭐 먹고살지에 대한 주제 등 다양한 소재가 오고 갔다. 속으로만 삭였던 마음을 꺼낼 상대에게 안락한 위로를 얻었다.


아쉽게도 나에게 든든한 위로를 주던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이사 갈 집을 찾고 있었다. 즉 친구와 함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울적해졌다. 다시 혼자로 돌아갈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친구와 밤새 나눴던 대화의 그리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모든 시간이 한때가 되어버리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씁쓸해졌다. 공허함이 비집고 올 틈이 없도록 음악이나 TV 소리를 틀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친구는 집을 나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더 저렴한 월세를 찾기 위해 인천으로 내려왔고, 운이 좋게도 투룸을 저렴한 월세로 살게 됐다. 하나둘씩 정리가 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불안감으로 머리는 복잡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서른이 되었다. 서른. 숫자의 압박을 무시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나잇대별 매뉴얼과 나를 비교할 때가 있다. 그 결과 나는 직장과 돈이 없고, 집도 계속 옮겨 다니는 등 내가 그린 미래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관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회사가 두려워 회사를 버렸다. 그리고 나를 선택했다. 이젠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나를 브랜드화하여 글 쓰며 조금씩 먹고살고 있다. 혼자 하는 일이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칭찬 한마디에 기분 좋아지고, 함께 일해보자는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된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 쉽지 않았다. 불안과 다행의 반복된 시간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도 같다. 그래서 지난 내 모든 순간이 애틋하고, 앞으로의 불안이 기대되기도 하다. 프리랜서의 길도 만만치 않겠지만, 매 순간 할 수 있는 답을 찾으면서 더 나은 삶을 찾지 않을까 싶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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