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생계 사이
반복되는 감정노동
일은 왜 해야 하는 걸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입사할 때마다 흔히 들었던 말이 있었다. “적어도 2,3년은 버텨야 이직할 때 좋아" 2년과 버텨야 하는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이 일이 재미있는지, 나와 맞는지 확인하기보다 훗날 이직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몇 년 뒤 버틴다는 말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신입 모집 공고에도 경력 있는 사람을 뽑고, 공백기가 있으면 게으른 사람으로 보고, 이직이 잦으면 회사보다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회사가 많았으니까.
입사 준비할 땐 많은 자소서를 쓰고 떨어지면서 감정노동을 하고, 퇴사할 땐 해야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과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감정노동을 경험해야 한다. 이 사실이 너무 공허해져서 며칠간 우울이 지속되기도 한다. 그 우울을 정리하지 못해도 또다시 우울감을 더해줄 회사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감정노동을 할 바에 참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만둔다고 해도 좋은 회사를 만나기란 어렵고, 그 회사를 만나기 전에 많은 회사에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이 회사나 저 회사나 이상한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니 참고 지내자며 애써 위로하며 버티는 삶을 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일과 사람에 익숙해질 때가 오긴 하니까.
위축되는 생활
지금도 월세와 공과금 때문에 돈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데, 훗날에도 돈에 허덕일까 무섭다. 그러니 줄곧 따라다니는 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고, 먹고살기 위해서 매일 늦은 저녁에 퇴근하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삶은 살았는지도 모른다. 공과금과 빚으로 돈을 쓰는 나와 달리 예쁜 옷을 입은 친구를 보면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경제적 부담 없이 마음껏 사고 싶은 걸 사는 친구를 볼 때도 나 자신이 위축되기도 했다. 위축될 때마다 먼 미래를 상상했다. 직책을 얻어 결정권자가 되고, 예쁜 옷도 입고, 업계에서 유명해져서 강의도 나가는 그런 상상. 그렇게 되기 위해서 피땀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또 그러고 싶진 않다. 지금은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더라도 일하면서 피곤한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왜 편한 삶을 살고 싶으면서 최고의 상상을 할까?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맘때쯤 차를 끌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고, 화려하게 꾸미겠지? 주인공 모습을 나에게 대입하며 상상했다. 주인공 나이에 가까워질 때도 여전히 주인공 모습과 멀어져 있는 나를 볼 때도 언젠간 저 모습일 때가 있을 거야 라며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상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저런 모습이 되어야만 하는 거지?" 아마 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려서 상상을 멈춘 건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비교하면서 살았을까? 왜 그렇게 피곤한 삶을 선택했을까?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드라마 주인공 모습과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난 편한 옷이 좋다. 구두를 벗으면 까진 상처가 따가웠고, 정장을 입을 때마다 경직되는 자세가 불편했다. 그런 걸 싫어하는 내가 그런 삶을 꿈꾸고 살았다니. 상상 속 이미지가 아닌 진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이 나를 어떤 삶을 이끌어 줄 것인지 생각해봤다.
꾸밈없는 나와 일
난 일과 삶이 분리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집에 왔을 때 끝내지 못한 일을 생각할 때도 많았다. 즉 나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내가 일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성취감을 느꼈으면 하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 어차피 어떤 일을 하든 밤에 퇴근하는 일이라면 성취감만큼은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뭐 어쩌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하는 일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건 분명하다. 제일 좋은 건 성취감을 느끼면서 칼퇴가 보장되고, 점심식사가 지원되는 곳인데. 이런 회사는 없겠지? 나와 맞는 일이나 직장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꿈의 직장을 마음속에 품고, 계속 회사를 입사하고 퇴사하며 조금이라도 꿈에 가까운 직장을 찾고 있다. 그래도 어딘가에 있겠지 하면서.
월간심플 9월 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