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우리 일상이 담겨있다

음식 소리로 어떤 상황이 생각날 때가 있다

by 매실

음식에 우리 일상이 담겨있다

음식 소리로 어떤 상황이 생각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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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마치 파전과 기름이 만나는 소리와 비슷해서 비 오는 날이면 파전이 생각난다. 이처럼 음식 소리를 통해 어떤 상황이 떠오를 때가 있다. 커피 내리는 소리가 나른한 아침을 생각나게 하는 것처럼.


보글보글


아침엔 보통 배고파서 잠에서 깬다. 눈 뜨면 먼저 천장이 보이고 거실에서 엄마와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린다. 오전 7시쯤이구나.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 방에서 “엄마, 나 일어났어.”라고 소리친다. 엄마는 같이 밥 먹자고 말하지만, 이불 밖으로 나갈 힘이 없어서 “나중에”라고 답한다. 그새 다시 잠들었다 깨니 엄마의 분주한 움직임이 들린다. 나를 부르며 장조림이랑 된장찌개 해놨으니 먹으라고 한다. 나의 아침의 시작이다. 오늘도 무사히 아침이 왔구나.


곧 내 생일이다. 예전 같으면 엄마에게 내 생일이라며 늦게 올 거라고 미리 당부했을 것이다. 요즘 생일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이렇게 추운 날에 날 낳으시느라 고생하신 엄마에게서.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진통은 심했는지, 날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내가 잘 큰 것 같은지. 엄마가 대답하기도 전에 여러 질문을 퍼부었다. 이번 생일엔 내가 미역국을 끓여야겠다. 검색을 통해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면서도 맛있는 레시피를 적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이번 미역국은 내가 끓일 거라고. 말하지 않으면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 끓일 것이 분명했기에. 엄마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싫으셨는지 하루 전날에 끓여놓으셨다. 내게 더 자라고 말하면서 다음엔 꼭 끓여 달라 하셨다. 엄마는 엄마에게 신경 쓰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 부끄러우신 걸까? 어색한 거겠지.



바삭바삭


자취했을 때 냉장고에 항상 치킨너겟 아니면 냉동만두가 있었다. 배고플 때 시켜먹지 않고 바로 구울 수 있는 나의 든든한 비상식량인 셈. 갑자기 치킨너겟이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치킨너겟을 치킨처럼 튀기는 줄 아시고, 기름을 반 정도 프라이팬에 부어서 치킨너겟을 튀기셨다. 바삭바삭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가 좋아서 나와 보니 치킨너겟들이 기름 속에 잠들어있었다. 엄마에게 웃으면서 누가 치킨을 이렇게 기름 속에서 튀기냐며 웃었다. “기름을 살짝 두른 다음에 튀기면 되는 거야” 그다음엔 치킨 너겟을 볼 때마다 엄마 이거 기름, 알지? 하며 엄마를 놀린다.


엄마가 아침에 생선을 구워주실 때가 있다. 환풍기 수명이 다했는지 거실과 방 안이 온통 생선 냄새로 가득했다. 아침에 새로 입은 옷에서 생선 냄새가 났다. 엄마에게 생선 냄새가 난다며 아침에는 생선을 먹지 말자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미안했다. 매일 똑같은 반찬이라고 투정하고 생선을 구워주면 냄새난다 싫다하고 김치찌개를 하면 항상 똑같다며 싫다 하고 어떤 반찬을 먹고 싶냐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나인데. 그래서 반찬 투정 없이 아무거나 잘 먹기로 했다. 나물도 먹고 생선도 먹고 편식의 편차를 줄이려 노력하지만 콩은 못 먹겠다.

“엄마 콩밥은 안 하면 안 될까? 나와 콩은 맞지 않아”



아삭아삭


주말에 아침식사를 마치면 커피와 사과를 먹는다. 엄마는 사과를 4등분으로 깎아 아빠, 나, 엄마 각 한 조각씩 나눠 먹고 나머지 한 조각을 똘똘이에게(우리 집 강아지) 준다. 난 그때 강아지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춘다. 사과 씹는 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강아지도 사과를 먹으면 아삭아삭 먹는구나.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래서 사과를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나눠준다. 아삭 거리는 소리를 여러 번 듣고 싶어서.


엄마의 김치를 가장 좋아한다. 엄마의 김치를 먹고 나면 다른 식당의 김치는 먹지 못한다. 김장철이 될 때면 집으로 배추와 부추가 배달된다. 주말이면 온통 매운 냄새로 눈이 따갑지만, 몇 포기의 배추가 보이면 침샘이 고일 정도다. 가끔 엄마의 조수가 되어 엄마의 주문대로 옆에서 돕곤 하지만 특별한 레시피가 없는 듯 보인다. 어떻게 김치 맛이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 이번 김장철에는 내가 엄마의 김치를 배워보기로 했다. 배추를 다듬는 것부터 시작했다. 엄마는 옆에서 따라 하는 딸의 모습에 웃음을 참으시는 듯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책이나 보라 하셨다. 싫다는 나의 단호함에 하나둘씩 김장 방법을 알려주셨다. 보통의 일이 아니다. 소금으로 절이고, 찹쌀 풀을 끓이고 양념하고 간 보면서 끊임없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김장 김치를 반찬통에 넣기 전에 간을 본다. 아삭아삭하게 씹힌다. “끝났다” 하루 종일 김치에 매달렸더니 벌써 오후고 저녁이다. 저녁 식탁 위에 엄마와 나의 합작품 김장김치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딸 덕분에 더 맛있게 된 것 같다” 그 말 한마디에, 완성된 반찬에 괜히 뿌듯하다. 김치가 맛있는 건 엄마의 손 맛 때문인 것 같다. 그게 비밀 레시피인 것 같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손 맛.


월간심플 12월 '요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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