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를 때우기보다 제대로 챙기고 싶다

혼자여서 편한 것들이 있다.

by 매실

끼니를 때우기보다 제대로 챙기고 싶다

혼자여서 편한 것들이 있다. 그 편함이 익숙해질 때쯤 주위를 둘러봤다. 모든 걸 혼자 하고 있었다. 함께 하는 게 서툴러질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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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로망 독립

대학생이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없던 난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했다. 학교나 학과보다 어른이 된 것이 더 좋았다. 20살 로망은 독립이지. “이제 난 어른이니까 핸드폰 비용도 내가 내고, 용돈도 내가 벌게 “라고 말하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나였다. 이걸론 부족했다. 진짜 독립을 하고 싶었다. 돈이 없던 때라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독립은 기숙사다. 부모님을 설득하며 겨우 들어온 기숙사는 모든 게 새로웠다. 처음 보는 사람과 방 쓰는 것도, 월요일 밤 10시만 되면 라디오처럼 사연을 들려주는 것도, 늦게까지 놀다가도 점호시간 전까지 들어가기 위해 뛰었던 날들까지 모두.


기숙사는 한 가지 룰이 있다. 한 학기 동안 방을 쓰게 될 룸메이트와 식사하는 것. 입방식, 퇴방식. 입방식 때는 서로 어색해 예능 프로그램을 배경음악 삼아, 어디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 무슨 과인지 기본 정보를 묻는다. 퇴방식 때는 함께 살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치맥을 먹는다. 내가 1학년 때는 너무 아쉬웠다. 좋은 언니들을 만났기에 헤어지기 싫었다. 방학하는 게 싫을 정도로. 짐을 모두 빼고 비어있는 방을 보면 쓸쓸했다. 룸메이트 언니들은 헤어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나를 안아줬다. 그렇게 21살이 되고 22살이 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언니라고 불렸고 입방식과 퇴방식을 주도하면서 헤어지는 걸 어려워하는 동생을 토닥거렸다.


기숙사는 점호시간이 지나면 못 나간다. (우린 12시 30분이었다) 그 시간이 되면 알람처럼 배가 고팠다. 나가지 말라고 하니 더 나가고 싶고 더 배고픈 심리랄까. 미리 구비해둔 식량이 떨어졌고, 배고파서 잠이 오지 않을 때 야식을 시켰다. 3층이 방이었던 나는, 목욕 바구니와 모든 충전기 전선과 끈을 연결해서 야식용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그렇게 새벽에도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기숙사 안에서의 추억은 한 둘이 아니다. 좋은 일이 있거나 어색하거나 배고플 때 모두 룸메이트와 함께 음식을 먹었다.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방 친구들과 여러 고민을 나누고 연애 얘기를 하면서 웃고, 울었다. 난 이런 공간을 좋아했다. 그래도 혼자의 공간이 필요했다.


집밥이 그리운 자취생

학교생활에 적응될 때쯤 학교 후문에 있는 월세 방을 구했다. 이사하면서 생각했다. “이제 배달 음식은 멀리하고 내가 직접 만들어먹어야지”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과제에 치여 살았고, 놀기 바빴고, 동아리로 인해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요리할 힘조차 없어서 배달음식으로 매일 밥을 먹었다.


독립하면 음식에 관한 패턴이 있다. 음식을 해보겠다며 다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매번 배달음식을 시킨다. 그러다 건강에 위협과 생활비 걱정에 요리를 시작한다. 음식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은 있지만 먹는 시간보다 만들고 치우는 시간을 보면서 다시 배달음식을 찾는다. 이때 엄마가 양 손 무겁게 반찬을 가져다주신다. 그 반찬으로 며칠은 버티지만, 밖에서 먹는 것이 습관화되어 반찬엔 곰팡이가 생겨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날 위해 만들었을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반찬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또다시 직접 만들어 보려 하지만 맛이 이상하다. 집밥이 그리워지면서 사람들이 왜 집밥을 그리워하는지 알게 된다. 밖에서 먹는 것이 지겨워질 때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간다. 유일하게 레시피를 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음식은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 정도이다.


아마 익숙했던 것 같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항상 찌개 끓이는 소리가 났다. 보글보글. 식사를 마치면 엄마는 방으로 간식을 가져다주셨다. 엄마도 쉬고 싶으셨을 텐데. 어떻게 밥과 청소를 한꺼번에 할 수 있었을까. 늘 비슷한 종류의 음식이 차려질 때면 밥 먹기 싫다고 투정 부렸다. “뭐가 먹고 싶냐”는 엄마의 질문에는 항상 “몰라”라고 답했다. 내가 결정할 고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뭔가가 먹고 싶은데 뭐가 먹고 싶은지 모르겠고, 아무거나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아무거나 먹기 싫다고 해야 할까.


내 밥상과 다르지 않은 엄마의 밥상

주말이 되면 집으로 갔다. 주말마다 고기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평소와 달리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익숙함에 내가 없는 날들도 고기 밥상으로 배불리 먹는 줄 알았다. 미리 말하지 않고 집에 가기 전까지. 동생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고, 아빠는 야근으로 인해 엄마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은 김치, 국, 밥이 끝이었다. 나를 본 엄마는 왜 미리 연락하지 않았냐며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꺼냈다. 우린 왜 그럴까. 왜 나를 위함보다 누군가가 있어야지만 반찬을 더 꺼내게 되는 걸까. 자취집에서 나의 식탁과 엄마의 식탁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이제 월세 방의 월세가 부담스럽고 혼자의 공간을 갖기에 준비가 덜 되었다. 그래도 잠시나마 독립했던 덕에 반찬투정은 하지 않는다. 설거지가 내 담당이 될 때도 있고 직접 요리할 때도 있다. 음식 솜씨가 부족한 탓에 먹으면 어딘가 아플 것 같지만. 덕분에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아쉬운 건 다들 바쁘기에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아침뿐이다. 함께 식사한다는 건, 서로의 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 더 애틋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밥상이 달라진다

술친구, 밥 친구, 문화생활 친구 등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해야 하는 일과 밥상이 달라졌다. 고기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고기를 먹었고 면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면을 선택했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언제 보자”라고 말하면 “그래”라고 답장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일로 바쁘기에 약속 잡기도 어렵다. 몇 번의 거절을 받으면 ‘오늘도 그 친구는 바쁘겠지’라며 약속 날짜를 잡는 횟수가 줄어든다. 쓸쓸해진다. 밥은 혼자 여서 편할 때도 있지만 함께 먹을 때 더 즐거울 때가 있는데.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다. 백수 일 때도 친구는 만난다. 그들의 일상과 나의 일상을 주고받는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돈을 생각하게 되었다. 수입 없는 나는 한 끼 식사 만원도 부담스럽다. 친구를 만나 식사와 카페를 가면 적어도 2만 원 이상은 쓰게 된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 “나중에 보자”라는 말을 한다. 한 친구가 “내가 살게, 나와”라며 연락이 왔다. “취업하면 네가 사”라고 말하며 밥과 술을 사줬다. 좋은 친구들이 많은데 돈 때문에 그 친구들을 잃을 뻔했다.


동네 친구가 필요해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전화번호 목록을 보지만 결국 닫는 장면. 살면서 누군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인생에서 그 한 명만 있더라도 성공한 인생이라 하는데 난 과연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관계에 지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관계를 끊는 일이다. 차라리 그 관계에서 벗어나 나 혼자 꿋꿋이 살아가 보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혼자가 익숙해지고 편해진다. 그래도 외로운 건 싫다.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 한마디에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만나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


“언제 밥 한 번 먹자” 이 말이 인사말이 되었다. 진짜 밥을 먹자는 건지 아니면 그냥 형식적인 인사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뭐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난 여러 번 약속이 취소되었다. 몇 번 취소되면 약속 잡기 어렵다. 또 거절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경험은 상대방이 진심으로 밥 먹자는 이야기까지 형식적인 인사로 오해한다. 더 싫은 건 그런 인사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밥 먹자”라고 인사한다는 것이다.


잘 차려진 밥이 먹고 싶다

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상처 받았을 때 극복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를 괴롭히는 것뿐. 가령 딴생각하지 못하게 일만 한다거나 자격증 시험을 예약해놓고 그 일만 열중하는 일 같은.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때부터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 생각을 들어 보는 일. 카페에서 넋 놓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혼자 놀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았다. 혼자 있는 방법을 알아가니 내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내가 겪은 여러 고민을 나누면서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다.


바쁜 일상을 보내면 10분 만에 밥을 먹게 되고 커피는 여유가 아닌 잠을 깨우기 위한 수단이 된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대충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닌 수고한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직장에선 빠르게 먹는 직장상사 식습관에 맞췄다. 결국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남기는 날이 많아진다. 바쁜 일 때문에 한 끼를 때우게 된다. 안타깝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쉬는 날에 샤부샤부를 해 먹어야겠다. 맛있는 음식을 꼭꼭 씹으며 천천히 먹고 싶다. 나를 위해.


월간심플 12월 '요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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