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은 괜찮나요?

영화 <미스 스티븐스> 리뷰

by 매실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이 익숙해졌다. 솔직한 마음은 뒤로 감추고, 분위기를 파악하여 그때마다 필요한 말을 꺼내는 일엔 능숙해졌다. 그래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겠지만, 속으론 풀리지 않은 응얼이가 커져가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속앓이 할 때가 많아져서 인지 영화 <미스 스티븐스>을 보자 내 심정을 들킨 것 같았다. 빌리는 말했다.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하지 못 한 이야기가 많다. 때문에 다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신기하지 않나요?
매일 같이 지내고, 별 얘기 다하는데 서로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스티븐스는 마고, 샘, 빌리의 연극 경연대회를 참가시키기 위해 3일 동안 함께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내색하지 않던 스티븐스와 달리 그녀의 주변 인물은 주관이 뚜렷하다. 연극은 하고 싶지만,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알았던 마고. 그녀는 그런 마음을 감추지 않고, 직접 대면했다. 샘 역시 커밍아웃하며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직면했다. 빌리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척'하지 않아 학교에선 요주의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연기자의 삶의 균형을 갖춘 엄마까지. 그들 사이에서 스티븐스는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기보다 감추기만 한다.


스티븐스는 늘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의 또래를 만나지 못했다. 우연히 경연대회에서 유부남 선생님을 만난다. 거기서 선생님은 자신이 학교 다닐 때 영어 선생님이 섹시했고, 아이들 머릿속은 온통 섹스로 가득했다고 말한다. 그 말 때문에 자신처럼 아픔을 가진 스티븐스를 위로하고자 하는 빌리를 오해한다. 빌리를 잘 알지 못하는 나 역시 색안경을 끼고 그를 봤다. 스티븐스에게 선 넘는 행동 할까 위태롭기도 했고.


슬퍼하는 게 보이는데, 내가 기쁘게 해 줄 방법을 아는데,
저한테 자꾸 가라고만 하셨잖아요.


관심이 필요한 학생이란 이미지 때문에 스티븐스는 빌리에게 선을 그었다. 선생과 제자 관계를 빼고 보면 그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인데. 빌리는 위로하는 방법을 알았다. "슬퍼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빌리는 슬픔을 대처하는 자신의 방법을 스티븐스에게 공유했다. 좀 이해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라기보다 자신처럼 슬픔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오늘이야말로 진실을 들어야만 해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또 내가 어떤 존재인지. 우린 진실한 대화를 10분 채 못했어요. (생략) 왜 내가 원치도 않는 사람이 되려는 건데? 저 사무실에서 뭘 하는 거야? 그 무시를 당하면서도 머리나 조아리고. 내가 원하는 건 전부 저기서 내가 난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왜 난 그렇게 말 못 해요? 아버지, 날 봐요. 난 평범한 사람이에요. 당신도 그렇고요. 난 특별하지 않아요.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그저 남들처럼 개고생만 하다가 쓰레기통에 처박힌 외판원일 뿐이죠. 그리고 나는? 시급 1달러짜리 인간이에요! 7개 주를 돌아다녀도 그 꼴을 못 면했어요! 트로피 같은 거 이제 못 가져와요. 더 이상은. 더는 그런 걸 기대하지 마세요.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나예요. 그게 다예요.


스티븐스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서 일까. 빌리의 ‘세일즈맨의 죽음’ 모놀로그 독백 대사가 마치 스티븐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저 나일뿐, 평범한 사람일 뿐. 기대가 반가울 때도 있지만, 오히려 자신을 감추게 할 때가 있다. 스티븐스 역시 괜찮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숨기는 것처럼.


선생님도 누군가에게 기대셔야 해요.


“부모님에게 기대. 그게 부모님이 계시는 이유니까”라고 말하자 빌리는 “선생님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해요”라고 말했다. 우린 늘 혼자서 해결하려 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그 피해를 입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거리를 두기도 한다.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인데, 그런 회피가 오히려 내 상처를 더 깊은 곳에 저장할 뿐이었다. 3일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관이 뚜렷한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도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나를 조금만 이해해줄래요?
나를 조금만 기다려줄래요?
나를 조금만 사랑해줄래요?
사랑이 느껴질 만큼만

괜찮은 척했지만
이젠 말할래요
참기 힘들어요


영화 <미스 스티븐스>에서 America의 ‘Sister Golden Hair’를 뺄 수 없다. 도입부와 중간중간 이 음악이 나온다. 마치 스티븐스의 입장을 대면하는 음악처럼 들렸다. 신나게 음악이 나오다가 갑자기 끊기고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신남과 멈춤의 연속 사이에서 스티븐스가 현실과 맞닥뜨리며 거리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차에서 빌리와 스티븐스가 이곡을 함께 부르는 면에서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힌트를 주기도 했다.



빌리는 문제아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해명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 시선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난 괜찮아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으며 '척'하는 가짜 모습을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 하나씩은 자신의 이면을 숨기기 마련이니 위로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빌리의 말처럼 말할 상대가 있다고 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을 꺼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힘듦을 스스로 해결하려 할 때가 많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말고, 진짜 내 모습을 꺼내, 내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상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진실한 관계를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 스티븐스가 느낀 것처럼.


<솔밤레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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