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Nov 22. 2020

좋아하는 걸 잊(잃)어버리게 하는 무기력함

취취취- 밥 짓는 소리다. 오랜만에 밥을 해 먹었다. 자주 하던 음식도 만드는 법을 잊어버려서 레시피 보며 요리를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좁은 골목을 지나가면 열린 창문 안에서 밥 짓는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에서 느껴지는 안락함이 좋다. 다 같이 모여서 저녁 먹는 게 별것 아닌데 요새는 별개 되어버려서 이 소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약속을 잡으려면 여러 번 날짜를 옮기면서 시간 맞춰야 하니까. 달그락 식기 소리와 분주한 소리를 듣다 보면 뭔가 따뜻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때론 바쁘고 때론 바쁘지 않다. 여유 생길 때마다 하루 종일 집에만 누워있었다.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손에 닿는 거리에 귤 한 바구니 놓고 드라마 보면서. 그렇게 휴식을 취해도 어딘가 늘 피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다.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혹은 하고 있지 않아도 에너지가 빠져나간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합리화하면서 쉬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렇게 아무 생각하지 않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걸 잊을 때가 많다. 가령 달그락 소리를 듣기 위해 걸었던 골목길이 아닌 지름길로 가거나, 장 보며 새로운 음식에 도전했던 일들이 아닌 배달음식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살고 싶다고 입 아프게 말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다. 이 사실이 쓸쓸하지만, 이런 쓸쓸한 감정에도 에너지를 빼앗겨 그냥 쓸쓸한 채로 내버려 뒀다. 그러다 갑자기 요리하고 싶은 마음에 시장에서 장을 보고 화장품과 책으로 가득한 식탁을 치우고 양파를 썰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 기분은 장시간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나의 에너지가 더 나빠지지 않게 도왔다. 쉴 때는 정말 아무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무기력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던 기분을 잊지 않으려면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 결국 나를 위해. 무기력함은 내 외적 내적인 모습을 잃어버리게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잊게 하고, 무엇에 에너지를 얻게 되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럴수록 이 무기력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노력으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 이 둘을 잘 분리하여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하며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방법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 무기력함에 나를 잃지 않도록. 오랜만에 밥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니 중요한 것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 일에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있지만, 일은 결국 잘 먹고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에 나를 잃어가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가 싫은데, 혼자가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