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Jan 24. 2021

잘 지내고 있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미 몇 달이 지났다. 명절 때 말고는 자주 찾아뵙지 않아서,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했을 때 놀라기만 했다. 그리고 바로 엄마가 생각났다. 7남매 중 가장 큰 언니, 큰 누나인 엄마. 엄마는 간호사 전화를 받고 인천에서 택시 타고 남원까지 갔다. 출발한 지 10분 채 되지 않았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 괜찮아?" "응. 지금 통화하기 그러니까 끊을게" 엄마는 말을 아꼈다. 내가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건 엄마를 닮았나 보다. 아빠랑 뒤늦게 출발해서 남원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엄마를 포함해서 이모들이 나를 반겼다. 처음엔 신기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서일까. 아니면 가족 앞이라 눈물을 숨기는 걸까. 슬퍼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께 인사 한 뒤 옷을 갈아입었다. 코로나 19로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이미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엄마와 이모는 오시는 손님마다 식사를 챙겼고, 대화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장례식장 안쪽에 앉아있는 내게 이모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진짜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셨어. 네가 이걸 글로 쓰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미소 지으며 할머니 영정사진을 봤다. 아무 표정이 없으셨다. 예전부터 얼핏 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할아버지가 일은 안 하시고 매일 술만 드셨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때리셨다고. 이 때문에 이모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고. 그 사연이 떠오르면서 할머니의 삶이 궁금해졌다. 장례를 마치고 막내 이모가 할머니와 이모들이 쓴 편지를 보내줬다. 이모가 보낸 편지 중 엄마 이름이 보였다. 그중 몇 개를 꺼내 읽었다. "봄은 이제 우리들 곁에서 물러간 지 오래고 초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울컥했다. 우리 엄마, 이렇게나 감성적인 소녀였구나.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혹은 살기 위해 그 마음을 점점 잃어갔구나. 편지 썼을 때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이모에게 건넨 말이 마치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잘 지내는지 안부 묻고, 연락을 잘해주길 바라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말이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 위축된 내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같았다. "잘 지내고 있지?"


엄마의 삶이 궁금해서 어린 시절을 물으면 늘 같은 말을 했다. "기억 안 나"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면 내 고민을 핑계 삼아 엄마의 삶을 묻곤 했다. 엄마가 꾹꾹 힘주어 쓴 모든 편지에는 걱정과 불안이 담겨있었다. 큰 언니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서글픔과 미안함, 엄마와 동생 등 신경 쓸 사람이 많은 와중에 혹독한 사회생활까지. 엄마가 강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였다. 엄마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기 위해 둘째 이모에게 많이 의지하지 않았나 싶다. 엄마처럼 나도 첫째이다. 무언가의 압박을 준건 아닌데 첫째라고 하면 책임감이 생긴다. 돈을 벌면 하나라도 사주고 싶고, 그러지 못 했을 땐 미안하고. 역할이 정해진 건 아닌데 이상하게 내가 생각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했을 때 나 자신을 탓하면서 말이다. 엄마 편지 속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엄마가 안타까웠다. 그냥 하는 걱정이 아니라 애절하고 깊이 있는 걱정이라 더더욱. 편지를 접는 방식이나 글씨, 편지마다 늘 적은 글마저 엄마의 습관도 보였다. 난 정말 엄마를 모른다. 알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할머니 삶뿐만 아니라 그 속에 얽혀있는 엄마, 이모들의 삶까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엄마, 이모의 삶을 담은 소설을 쓰기로 다짐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삶. 편지 속에 있는 서글픔, 그리움, 미안함 때문에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왠지 올해는 고뇌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설레면서도 부담되고, 걱정되면서도 잘 마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걸 잊(잃)어버리게 하는 무기력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