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Jan 24. 2021

공허함을 잠재워준 주변 사람들

알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부스스한 머리에 반쯤 뜬 눈으로 핸드폰을 보니 9시였다. 움츠려있던 몸을 겨우 일으켜 앉은 뒤 약 10초 정도 멍 때렸다. 다시 이불속에 파묻히고 싶었지만, 참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분명 겨울 공기 냄새인데 따뜻한 봄 향기가 섞여있었다. 괜히 기분 좋았다. 기분이란 건 참 신기하다. 이유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가끔은 공허하고, 가끔은 하늘을 날아갈 듯 좋고, 가끔은 짜증 섞인 화가 나는 게. 작년 하반기 때부터 이런 기분이 들쑥날쑥했다. 친구들은 자주 우울에 빠지는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별 탈 없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물론 답답해서 잠을 설치고 이 답답함을 풀 수 없어서 마음 아픈 날도 많았지만. 이런 감정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손을 내밀어 주길 바라면서도 아무도 몰라주길 바랐다.


어제는 친구들과 우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엄마한테 물어봤어. 갱년기 괜찮은지, 우울할 때 어떻게 하는지. 엄마가 그러더라고. 낮에 힘들면 친구한테 전화해서 수다 떠는데, 저녁에는 그럴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엄마한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도 어려웠다.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아니까. 누구에게나 우울은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힘들어하던 감정을 다른 이도 느끼고 있다는 게 마음 아팠다. 이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애써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외면되지 않은 감정도 있었다. 그럴 때면 친구에게 부탁한다. 내가 힘든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분주하고 시끄럽게 찾아오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마음을 놓았다.

 

별일 없이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들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산책하다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사는 게 참 고단하게 느껴지다가도 별거 아닌 것 같다. 허망하다가도 이런 공기 냄새 하나에 기분 좋아지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면 말이다. 갑자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든든하고, 안쓰럽고, 고마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지내고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