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미워해도 되는 존재였다

<한 줄도 좋다, 가족영화> 도서 리뷰

by 매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예전에는 이 말이 나를 지켜주는, 내가 살아갈 힘이 될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 다양한 가족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든든하고 어떻게 보면 폭력적인 게 가족이라고 말이다. 가족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눈물이 맺히고, 아빠 하면 권위적인 모습이 생각나는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보수적이기보다 따뜻한 말을 건네는 아버지로, 일을 열심히 하는 어머니로. 하지만 이 역시 보이는 가족의 모습일 뿐이다. 폭력을 밥먹듯이 휘두르는 가족,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가족, 책임감 없는 가족, 얼굴도 보지 않은 가족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가족이 세상에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줄도 좋다. 가족 영화> 책에서는 20편의 가족영화 스토리가 담겨있다. 줄거리의 소개보단 가족 형태에 집중하여 작가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다. 이 생각을 읽다 보면 진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가족은 욕하면 안 되는 존재로 생각했다. "어떻게 가족을 욕해?"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할까. 청소년 때 엄마 아빠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지금이야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매일 일만 하시고, 내 꿈이 무엇인지 등을 전혀 궁금해하지 않으셨으니까. 함께 잘 먹고 잘살자고 한 일들이 오해를 만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란 지레짐작으로 우린, 마음의 벽을 만들기도 한다. 그때 서운한 마음과 첫째라는 무게감 등으로 힘들었는데, 이 힘듦을 친구와 공유하지 않았다. 초반에 말했듯이 가족은 욕하면 안 되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때 어떤 영화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연히 가족 관련 영화를 봤고 가족을 싫어하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때에 따라 미워할 수 있고, 가깝기에 상처 받을 수 있는 게 가족이었다. 그 당시 난 가족을 미워했어도 됐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됐고 얼마나 힘드게 사셨는지 알 것 같기에 부모님께 미안하다. 그 영화 이후로 가족이니까 용서하고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조금 폭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 마련인데, 그전부터 이해하라고 강요받으며 살아오지 않았나.


한 계단만 내려가면 그곳에 우울이며 슬픔, 후회와 원망 같은 어두운 마음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고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지만 끝내 그 문을 열지 않고 돌아 나온다. 그 문을 여는 순간 거기에 빨려 들어갈 테니까. 살겠다고. 그래서 그것은 체념이거나 지혜이며, 동시에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살아야 하니까. 그녀의 나날은 물이 넘치기 직전까지 찬 유리컵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꿈은 있었던가, 없었던가. 뭔가 있었던 듯도 싶은 그 자리에 덩그러니 물컵만 놓여 있고, 찰랑거리는 물을 조금 쏟을 엄두를 내지 않고서는 차마 그 컵을 들 수 없어서 위태로운 삶은 계속 목이 마르다. (p69)


가족 얘기를 하면 “저런 가족이랑 있으면 힘들긴 하겠지, 근데! 나도 만만치 않아!” 하면서 불행 배틀을 시작한다. 그러나 상대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 없으며 상처는 무게를 잴 수 없다. 알지 못하니 오히려 말의 무게를 둬야 한다. 때론 공감하며 말을 들어주거나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때가 있다. 나서지 않아도 말이다. 요새 미디어에서 가족폭력, 살인 등을 많이 다룬다. 잔소리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간섭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친다. 눈으로 직접 폭력의 현장이나 의심 가는 상황을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영화를 보면 “가족이니까 금방 풀릴 거야, 아무 일 아니겠지, 가족이니까 다투는 거겠지”라고 의심은 하지만, 불편함이 싫어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목소리를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이해한다. 그래도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일수록 피하지 않고 손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하고,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얘기 외에도 배 아파서 난 자식이 아니라고 학대하고, 상속 때문에 싸우는 등 뉴스로 접하지 않은 수많은 가족이 여전히 많다. 보이지 않았기에 몰랐던 가족 그리고 상처.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과 가족을 만날 거다. 완전하지 않은 가족을.


의연한 척하지 말 걸 그랬다. 평생을 참 꼿꼿하게도 살았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그러지 말 걸 그랬다. 한 번씩 느슨하게 풀어줄 걸 그랬다. 불안을 속에 품고 겉으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할 때 긴장한 신경은 더 팽팽해진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구석에서 또 하나의 신경 줄이 툭, 끊어진다. 우리는 누구나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닳고 해진다. 강했던 것들도 차츰 약해진다. 세월의 풍화를 견딜 수 있는 건 없다. 흐르는 것은 어디에도 오래 담아 둘 수 없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제일 뒷전이 되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잘하지 않으니까. 오해는 쌓이지만, 그 오해를 풀지 않은 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가족이니까. 우린 가족이란 이유로 상처를 쉽게 주고 상처를 어렵게 털어낸다. 그리고 미안해한다.


우리 모두 가족이 있다. 피가 섞이든 섞이지 않든 가족 같은 존재 말이다. 그게 나를 숨통 쥐게 만들 때도 있고, 힘이 되어줄 때도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모두에게 가족이 있지만, 가족의 의미는 다를지 모르니까.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가족이 행복한 것은 아니며, 내가 불행하다고 다른 가족도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공통점이 아닐까. 따뜻한 보금자리를 필요로 하고, 힘들면 품에 안겨 흐느끼게 울고, 좋은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공유하고 싶은 것처럼. 모두에게 어려운 가족, 그래서 더 신경 쓰이는 가족. 각자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책 문구 출처 : 한 줄도 좋다, 가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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