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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Aug 23. 2021

묻지 않던 안부 속에서 지나간 시간

익숙하고 가까워서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를테면 가족. 엄마 아빠와 같이 살 때 매일 묻던 안부를 따로 살면서 점점 미루게 됐다.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너무 늦어서 하지 않고, 듣고 있던 곡이 끝나면 연락해야지 하다가 까먹어서 연락하지 않고. 내가 놓쳐서 묻지 않던 안부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사실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늘 바빠서 방해가 될까 봐 연락을 참고 있다는 것도. 그럴수록 내가 더 나서서 연락해야 하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꾸 놓친다.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 2> 부모님 건강 관련 에피소드가 나왔다. 의사지만, 정작 내 가족의 건강 상태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힘들고 죄책감 느꼈던 사연. 걱정되는 게 많은 만큼 쓴잔소리가 많아진다는 걸 안다. 안타깝게도 알아도 듣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 나 역시 쓴잔소리로 "그만 좀 해!"라고 답하고 만다. 전화를 끊으면 곧 후회할 거면서. 왜 우린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왜 외면하는 걸까.


내가 연락해서 비타민도 챙기고 제철과일도 먹어라 등 잔소리를 하는 이유가 "나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라고 스스로의 합리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마저도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나 혼자도 버거우니 내가 챙기지 않아도 엄마 아빠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챙겼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 내가 이렇게까지 클 수 있었던 건 다 엄마 아빠의 보살핌 때문이라는 걸 잊은 채. 그러다 아빠가 몸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아빠한테도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이렇게 짜증 날 이유는 없는데 이상했다. 그냥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그거 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뒤로 연락을 자주 하려고 하지만, 나는 진짜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그새 까먹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또 시간이 늦어서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고 싶어서 연락을 잊게 되고. 실수를 인정하면 그다음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해야 하는데 나는 그 실수의 결과를 알면서도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이럴 시간에 엄마 아빠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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