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엔 그림(아크릴, 유화), 목요일 토요일엔 쿵후(중국 무술), 토요일엔 드럼을 배우고 있다. 한 달에 하나씩 취미를 가지겠다는 마음이 커져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을 따르다 보니 어느새 취미 부자가 됐다. 일주일이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인지 피곤하기보다 재미있다. 비록 눈은 풀려있지만. 요일마다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을 때 그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돌아올 화목토마다 무언가 설렌다. 시간을 체감하기도 하고.
빨리 물감을 칠하고 싶다, 빨리 드럼이 익숙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빨리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초보 단계지만, 성장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을 즐겼다. 아쉽게도 일이랑 병행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라 가기 싫을 때도 있다. 체력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좋지 않다니. 관장님께 체력 키우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덕분에 매일 10분씩 복부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미션이 생겼다. 목표가 생기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낭비한 시간이 많았기에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의 소중함을 알게 된듯하다. 그림, 쿵후, 드럼. 각 성향이 많이 다르다. 선생님이 하는 말들도 다르고, 그 취미를 잘 해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도 다르다. 하지만 비슷한 건,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답답함, 좋아하던 일이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도망가고 싶을 때이다. 좋고 싫음이 공존하여할 때마다 새롭고 짜증은 늘지만, 그 속에서도 배울 건 많았다.
그림 그리기 전에 그릴 대상(사진)을 찾고, 따라 그리면 된다.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기 위해선 관찰은 필수다.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한 희미한 색깔도 찾아내야 하고, 사진 속 시간은 언제인지 등을 잘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관찰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는 많이 다르다. 친구 생일선물로 줄 그림을 그렸다. 손흥민 뒷모습. 선생님이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지금 그가 살짝 하늘을 보고 있죠? 그래서 왼쪽과 오른쪽 귀의 위치가 다르고, 들어오는 빛에 따라 생기는 그림자도 달라요. 이 사진은 경기가 끝난 직후인 것 같아요. 어깨에 힘이 빠져 보여요." 사진 속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시간을 상상하며 그 순간에 어울리는 색깔을 찾고 채색을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경기를 마치고, 바라보는 하늘은 어떨까. 경기를 연습을 마친 기분은 어떨까. 하늘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손흥민 선수의 감정은, 그 친구의 감정은, 내 감정은 어떨지 생각하며 그렸다.
한때 그림 그리면서 나 자신에게 화났던 적이 있었다. 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정의 즐거움은 생략하고 결괏값을 먼저 생각하느라 조급해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 그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짜증이 늘고 배려는 사라졌으며 생각보다 나약한 면에 나 자신이 미웠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유화를 배우다가 취미반으로 클래스를 바꿨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을 천천히 꼼꼼하게 그릴 수 있게 됐다. 근데 나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수업 내내 조급해했다. 이런 나와 달리 옆에 있던 분은 묵묵하게 캠퍼스 그림을 채워갔다. 완성도 높은 그림을 위해 고민하고 덧칠하는 모습에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취미마저 즐기지 못하면 이걸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이유 있는 시작에 이유 없음으로 끝맺음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한층 작아져있는 나를 위로해주셨다. "그림 그리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요. 빨리 그려서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정말 천천히 정교하게 그려야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죠. 그러니 그때 기분에 맞게 그리면 돼요." 그림을 그릴 때 잠시 숨을 멈춰야 할 때도 있고, 과감하게 칠하거나 편하게 색칠하는 경우도 있었다. 밑 작업 없이 바로 캠퍼스에 색을 입히는 일은 조심스럽지만, 그럴 땐 색을 덧칠하거나 물티슈로 지우면 되니 과감할 필요가 있다. 색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씩 그림을 이해하고 색을 찾아가는 건 여전히 재미있다.
쿵후. 내 몸을 이해해야 몸을 좀 더 균형 있게 쓸 수 있다. 오른쪽과 왼쪽의 힘의 차이를 찾고 그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련하고 또 수련해야 한다. 연습하고 스트레칭하면서 어제의 내 몸과 오늘의 내 몸의 차이를 비교하는 법을 배웠다. "몸의 흐름을 이해해야 문제를 찾을 수 있고, 그걸 해결할 수 있어. 근데 그건 자신이 해야 해" 매번 같은 동작을 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걸 발견하고, 잘 되지 않은 건 계속 연습하여 몸에 익히도록 했다. "상대가 나를 공격하려 할 때 오른손에 이렇게 힘을 줘야겠다!라고 생각할 시간은 없어. 내 몸이 저절로 반응할 수 있도록 습관화시켜야 해" 역시나 몸으로 자세를 익혀야 하는데 몸치인 내가 그걸 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연습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하며, 일할 때도 산책하며 몸을 풀어줬다.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쓰기 시작했다.
드럼을 배운 지 며칠 되지 않았다. 몸치만큼이나 박치다. 따따따따 천천히 리듬에 집중하면 되는데, 성격이 급한 건지 뭔지 따따다다다따. 빠르게 혹은 더 느리게 쳤다. 집중이 필요했다. 이게 맞나?라고 생각할 때마다 박자를 놓쳤다. 즉 의심하지 않고 최대한의 집중력을 끌어내야 했다. 왼손, 오른손, 왼발, 오른발. 신경 쓸 게 많은데 박자까지 신경 써야 한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안 좋은 습관을 버리고 드럼에 맞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내 문제를 알고 그걸 바꾸기 위해 의식적으로 연습하여 새 습관을 만들어야 했다. 덕분에 안 좋은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는 법을, 쿵짝쿵짝 박자에 맞게 리듬을 즐기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잘 안되던 쿵짝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템포를 빠르게 하면서 좀 더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까지 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늘리고 있다. 드럼을 배우고 나서 음악 들을 때 드럼 소리가 크게 들린다. 쿵쿵따따따따. 멋지다.
일상이 무료해서 시작했던 취미.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하루의 재미가 더해졌고 일상의 건강함까지 생겼다. 배울수록 그 안에 숨겨진 철학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배움은 내 가치관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시도와 그 안에서 배우는 깨우침의 재미를 알아서인지 또 다른 새로운 취미를 찾고 싶다. 그래서 원래 하던 글쓰기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상관없는 조합일 수 있지만, 아이패드를 샀다. 출퇴근 시간만 약 3시간. 출퇴근 때 소설, 에세이를 쓰기 위해 노트 어플을 구매했고, 영상과 사진을 배우기 위해 라이트룸, 포토샵, 영상 편집 어플을 깔았다. 새로운 공책을 사고 맨 첫 장에 오늘 날짜를 쓰는 기분이랄까.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더 재미있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