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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Nov 15. 2020

저는 부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절약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될 것이고, 부자가 되어야만 한다. 돈 덜 쓰면, 돈 모이고, 모인 돈은 자산이 된다. 이 돈으로 땅 가진 호호 할머니로 강아지 한 마리, 국화 정원 조금, 텃밭 한 뙈기와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다. 이건 굉장히 단순한 산수다.


약 4년 정도 육아휴직을 하면서도 새 집 사서 4년 동안 세를 줬습니다. 돈 덜 쓰고, 돈 모이면 그게 자산이 됩니다. 쑥스럽지만 자랑을 하려 해요. 절약을 권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순한 산수를 '자린고비', '짠내', '궁색'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이야기가 주류다. 이 이야기는 힘이 세다. 힘이 센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니까 당연히 힘이 세다. 


냉장고 4대 중 술 냉장고를 따로 둔 사람은 여유로워 보여야 하고, 삼시세끼를 자급하며 밥을 짓는 사람은 우스꽝스러워야 한다.


기업들은 큰 악의를 갖지 않고, 이윤 추구를 위해 마케팅을 한다. 영화 간접 광고로 '누룽지 잘 만드는 밥솥'을 넣어야 돈을 버는데, 관객들에게 '지금 가진 밥솥에도 누룽지 만들 수 있다.' 혹은 '누룽지를 꼭 먹어야 하는 거냐.'라는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마케팅이 누적되고, 사회의 주류 담론이 됐다. 우리가 보는 어떤 미디어(심지어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인터넷 신문, 유튜버와 SNS까지)에나 물건을 홍보하는 사람만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기업의 체계적인 마케팅에 우리는 점점 더 자산을 잃어간다. 돈을 썼으니까! 우리가 자산을 잃은 딱 그만큼에 비례하여, 기후위기가 지속됐다. 

적도에 누적된 에너지는 어찌할바를 모르며 수퍼태풍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리핀은 시속 150km 때아닌 태풍으로 수 십 명이 사망했다.  

우리가 돈을 쓴만큼 기업은 물건을 생산했고, 산을 깎아 알루미늄을 채굴해서 캔커피를 만들었다. 석유를 파내 플라스틱을 만들고, 도로 위 자동차를 굴렸으며, 공장에 쓰일 전기를 생산했다. 


탄소를 머금을 산과 흙은 힘을 잃었고, 바다는 산성화가 되어가며, 대기는 탄소층이 두꺼워졌다. 지구는 뜨거워졌고, 시베리아 동토층은 녹아 얼어 있던 바이러스를 배출할 예정이다. 동아시아는 물에 잠길 것이고, 2020년에서 2030년에는 기후 재난을 끊임 없이 겪을 수 밖에 없다.


2020~2050년은 인류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혼란을 겪을 시기가 될 것이다. 몇 년 차이는 있겠지만 이 시기는 3단계로 나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말(2020~2030년), 생존 단계(2030~2040년), 그리고 재생의 시작(2040~2050년)이다.

-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 중, 시릴 디옹 지음


석유를 쓰지 않아도 경제가 망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때다. 물건을 생산하지 않아도, 매일 수 천 대의 트럭이 서울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경제가 온전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정확히는 우리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소비를 '행복'이라 믿는 한,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해외여행, 거품 목욕과 두툼한 스테이크가 우리의 진정한 욕망이자 안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하나 막자고 대만 여행을 가지 말자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황당해 할 것이다.


황당하겠지만, 지금은 가까운 지역에서 여가를 누리고, 도토리 묵에 마늘간장 양념해서 식사를 즐기는게 덜 미친짓이다. 지구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

장난감 회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장난감 말고 밖에서 숨이 차게 뛰어놀며 행복해지는 법을 안다.

답은 간단하다. 기업에게는 안됐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어야겠다. 돈을 덜 쓰고, 돈을 모아서, 땅도 사서, 농사도 짓고, 기후 위기에도 우리 식구 먹을 작물을 갖고, 집을 튼튼하게 지어야겠다. 


나의 아이들도 기업에 입사할만한 역량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할 때가 아니다. 시민으로서의 소양(교육과정 성취 기준), 덜 소유하더라도 이웃과 연대하며 행복할 수 있는 법, 동네의 자영업자들에게서 물건을 구입하는 습관, 자립할 수 있는 집안일 기술, 흙과 나무와 친해지는 감성을 배울 때다.


기업은 점점 늘어나는 절약가들에 대비하여,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업은 대안 경제를 위해 정부를 압박해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지금껏 모아둔 돈이 많으니, 잘 하리라 믿는다.


최소한의 소비를 선언하는 시민의 힘

나는 10년 동안 똑같은 자켓을 걸치고 출근하는 직장 동료들을 우러르는 담론을 꿈꾼다. 1년에 한 번... 아니 계절별로 한 번 씩 갈아치우는 자켓이 쌓이고 쌓여 시베리아 동토층을 녹여 잠든 바이러스를 깨울 테니까. 수퍼 태풍과 수퍼 바이러스와 미세먼지, 그리고 혹서와 혹한을 불러올 테니까. 낡은 자켓 입은 이들이 박수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낡은 자켓에서 기후 위기 대응의 연결고리를 읽어낼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자켓 광고 수입으로 먹고 사는 미디어에서 이 이야기를 해줄리가 없기 때문이다.


8년 째 입는 점퍼는 유행에 뒤쳐집니다. 그렇지만 오래된 점퍼를 입는 사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이들이며 기후 위기 대응에 도움이 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이웃집 백만장자 전략이 먼저다. 비닐봉지를 여러 번 씻어 다시 쓰는 검소한 이웃들이 사실 계좌에 백만달러 찍힌 백만장자들이라는 솔깃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절약을 자랑하고, 절약 덕분에 경제적으로 더욱 풍요로워 졌으며, 하기 싫은 일 따위 돈 때문에 억지로 하며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엄청난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안정감 있는 삶. 이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잘난체를 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절약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기본기다. 또한 알뜰주부와 미니멀리스트들은 이론상 구분이 어렵다. (광고 이미지 속 미니멀라이프와 알뜰주부의 인테리어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미니멀라이프는 제로웨이스트, 즉 쓰레기를 줄이는 삶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기후위기 대응의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 상품 자체가 과거에 야생을 파괴해 얻은 재료와 탄소를 뿜어낸 공장의 결과물이며 미래에 예정된 쓰레기니까.


이 상황에서 '최소한의 소비'야 말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귀금속을 덜 사는게, 뚝배기가 깨졌지만 이유식 끓이던 밀크팬에 된장찌개를 끓이는게, 그렇게 자원을 덜 소모하는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이라는 의미다.


검정 기모 스타킹에 구멍이 났던데, 오늘은 그것부터 기워야겠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용감한 사람이 되어, 부자가 되고 싶다.


기모 스타킹은 두꺼워서 구멍나면 기워신습니다. 꿰맨 자리에 가난이 깃든다고요? 아니요. :) 건강한 지구가, 그리고 부(富)가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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