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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Nov 15. 2020

'소비 수치심'을 아시나요? 저는 덜 사겠습니다

올 여름, 내 출근복은 티셔츠 여섯 벌과 바지 세 벌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티셔츠 중 한 벌은 솔기가 튿어진 걸 손바느질로 꿰매 입은 것이다. 철마다 신상 원피스를 사들이던 예전에 비해 지금 내 모습은 궁상일까?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입장료 없는 공원으로 간다. 열에 아홉은 도시락을 싼다. 식빵에 으깬 감자를 바르고 고구마를 굽는다. 물은 언제나 보온병에 담아간다. 유아 체험 프로그램이 떡하니 차려진 체험관과 주변 맛집을 순례하고, 목마르면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먹던 예전에 비해 지금 나의 여가는 후퇴한 걸까?

옷 솔기가 튿어지면 손바느질로 꿰매 입었다. 옷을 버리지 않고 2년 더 입으면, 옷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을 20~3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돈 덜 쓰려고 예산도 빠듯하게 잡았다. 우리집 부부 의류 예산은 6개월에 10만 원이라서 솔기가 튿어지면 고쳐 입었다. 하루 식비는 15000원이기에 플라스틱 곽에 포장된 샌드위치 말고, 도시락 통에 식빵에 으깬 감자를 발라 넣었다. 그렇게 소비 욕구를 달랬다.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궁색일지도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성숙해질 기회였다. 옷 있으면 옷 안 사도 되고, 집에 감자가 남았으면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된다는걸 예전에는 몰랐다.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 충분히 갖고 있을 때 소비를 멈추면 더 행복했다. 최소한의 돈으로 최소한의 소비를 함으로써 알게 됐다.


처음에는 부자가 되고 싶어 봉투에 만 원 씩 꽂아 쓰며 살림을 했고, 다음으로는 적게 쓰는 습관이야말로 노후까지 안정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확실한 대책임을 알게 됐다. 모은 돈은 넉넉해지고, 지출이 적어도 불편하지 않다.


덤으로 적은 돈으로 우아하게 사는 삶의 양식을 갖추게 된 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며 산다. 돈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지 않게 되었고, 여가 시간을 확보하여 어린 두 딸에게 따뜻한 닭칼국수를 끓여 준다. 돈에 휘둘리기보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게 됐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청소년들이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어요'라고 부르짖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절약이야말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임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최소한의 소비


요즘 돈을 쓰면 죄책감이 든다. 새 물건을 살 때마다 부끄럽다. 이런 기분에 구태여 없는 용어라도 만들어보자면 '소비 수치심(consumption shame)'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2010년부터 스웨덴에서 시작된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 운동의 연장선이랄까.


온실가스 주범인 비행기를 타는 데 부끄러우니 비행기를 덜 타자는 플라이트 셰임 운동과 더불어, 소비 수치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탄소배출물 때문이다. 새 물건 하나가 생산, 유통, 폐기될 때 탄소배출물이 뿜어져 나온다.


같은 논리로 새 물건 하나를 덜 사는 것만으로도 물건 하나를 덜 생산하게 된다. 잠재적 탄소배출물을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다. 돈을 덜 쓰는 일. 그 자체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쉽고 근본적인 일이다.

▲  아이가 엄마가 싼 김밥은 맛없다고 '가짜 김밥'이라 하길래, 김밥집에서 '진짜 김밥'을 샀다. 용기내서 도시락 통에 담아달라 부탁드렸고,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담아주셨다.

물론 소비는 자유다.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건, 개인의 역량이자 풍요로운 삶을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직접 농사지어 자급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에,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사지 않고서는 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다. 기업의 이익으로 나라 경제가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는 더더욱 권장될 만 하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도 시원치 않을 기후 위기의 시대다. 플라스틱으로 해양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의 장본인으로서, 이제 소비에 책임져야 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지금은 소비 자체가 '해(harm)'다.


쇼핑은 투표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확실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내가 오늘 산 물건'이다. 그래서 절약가들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쇼핑 하지 않음'으로써 기업들에게 투표한다.


소비자인 우리가 기후 위기가 신경 쓰여 더 이상 욕망대로 사지 않고 있으니,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착한 상품들을 생산해달라는 목소리다. 우리는 더 이상 소비를 미덕이라 여기지 않으며, 나 하나라도 물건 하나를 덜 사서 택배 박스의 비닐 포장을 줄이는 게 미덕이라 여긴다.



행복을 위해 생활 방식을 간소화한다면 우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파괴의 양 또한 급격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 1987년에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선진국의 소비 패턴이 세계적인 환경 훼손의 주범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부의 주인은 누구인가> 중, 비키 로빈, 조 도밍후에즈 공저


절약은 윤리적인 행동이다. 감히 덜 쓰는 삶을 살수록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서 좀 더 윤리적이라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막 살 수도 없는 기후위기의 시대니까.


게다가 돈은 덜 쓰면 모인다. 아주 간단한 산수 그대로 개인적으로는 좀 더 풍요로워졌다. 계좌가 넉넉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풍요로워지고 환경을 살리는 일에서는 공동체에게 유익하다. 


나는 당신의 계좌가 더욱 넉넉해져서 우리 모두가 풍요로워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불필요한 물건을 덜 사고, 가진 물건을 오래 씀으로써 우리는 개인적으로 넉넉해지고, 지금의 청소년들은 장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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