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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Apr 04. 2021

야채 짜장 도시락의 바로 그 감각


부장님이 밥을 사주신다고 했다. 아쉽지만 마다했다. 모듬돈까스가 눈 앞에 아른거리기는 했지만 참았다. 나에게는 야채 짜장 도시락이 있었으니까. 가진 밥도 있는데 배달음식을 먹는다면 목이 멜 것 같았다. 돈까스가 얼마나 맛있는데, 죄책감을 갖고 먹을 수는 없지.

야채 짜장 / 냉파 김밥(진미채김밥 + 계란김밥 + 참치김밥) / 야채 카레

되도록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되도록 고기도 뺀다. 배달음식에서 나왔을 플라스틱을 하나 줄이려고, 고기에서 나왔을 탄소배출물도 줄이려고. 그래서 '육식지양 도시락'을 싼다. 돈도 많이 절약했다.


이런 도시락, 처음이다. 돈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본 적은 있다. 연애할 때 꽁냥꽁냥을 위해 엉망진창 샌드위치를 싸기도 했다. 그런데 플라스틱과 탄소배출물을 줄이려고 도시락을 싸보기는 처음이다. 처음이니까 낯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다. 이런 감각, 익숙하다. 없던 마음이 아니다. 아마도 늘 갖고 있던 어떤 마음이었을거다. 뭘까?


육식지양 도시락을 쌌던 마음의 정체가 궁금해, 그 감각을 따라 올라가봤다. 아! 그거다! 안 쓰는 방 불 끄기. 겨울철 내복 입기. 세수 한 물에 걸레 빨기. 냉장고 문 빨리 닫기. 가까운 거리 걷기. 엘레베이터 대신 계단 쓰기. 양치할 때 컵 쓰기.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어릴 때부터 교육 받고 해 오던 일이었다.


그 동안 플라스틱이 완벽하게 재활용되는 줄 알아서 플라스틱을 썼고, 육식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51%나 된다는걸 몰라서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출처: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하지만 플라스틱은 전인류가 합심해서 싹싹 긁어모아야 겨우 36~53% 재활용 할 수 있다는 진실을 알게됐다.(출처: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지음) 동물성 식품을 줄이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호소도 들었다.


몰라서 못 했지, 알면 조금씩 한다. 매번 잘 할 수는 없다. 매번 안 쓰는 방 불을 챙겨 끄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6개월만에 내 돈 주고 산 삼겹살. 고기 살 때도 #용기내


육식지양 도시락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출근 도시락으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샀다. 젓가락도 집에서 싸가는걸 깜빡해서 일회용 젓가락을 쓰고야 말았다. 남편 생일에는 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찜을 해줬다. 삼겹살을 샀다. 육식지양을 하고 있지만, 특별한 날 삼겹살을 살 수도 있다.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될 때, 체력이 허락할 때, 가능하면 고기를 뺀 도시락을 싸서 간다. 알기 때문에 움직인다. 집에서 싼 도시락이 쓰레기를 줄인다는 사실을. 생각날 때 고기 한 번 덜 먹으면 탄소배출물이 줄어든다는 것을.


꽃을 살 때 포장 대신 신문지에 부탁드리기

야채 짜장 도시락의 바로 그 감각. 양치할 때 컵 쓰는 감각이다.

신문지에 포장한 프리지아의 바로 그 감각. 안 쓰는 방 불 끄는 감각이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팩이나 유리병에 든 물건을 사는 바로 그 감각. 3층 정도는 엘레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걷는 바로 그 감각이다.


이 모든 감각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가정 경제를 지켜준다.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단지, 지구를(아니 더 정확히는 인류를) 살리는 행동 양식이 몇 개 더 늘어났을 뿐이다.


그 동안 안 했던 일이라 조금 별나고 유난한 느낌이 나지만, 쓰레기 문제와 육식 문제 자체를 알게된지 얼마 안 된다. 2018년 쓰레기 대란 이후로, 2018년 IPCC(기후 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 개최 이후로,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우리는 조금씩 해야 할 일들을 알게 됐다.


몰라서 안 했지, 알고 나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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