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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Apr 04. 2021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미니멀리스트, 기후위기 대응

돈을 좋아하는 마음 덕분이다. 미니멀 리스트로 살아가게 된 건. 가진 물건을 비우고 나누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는건, 언뜻 '뺄셈'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이런 삶이 '덧셈'이라 좋다. 물질을 포기하지 않고 도리어 채우는 미니멀이라 좋다. 


소유를 위한 무소유라 하면, 법정 스님이 화를 내실까? 미니멀 리스트가 되면 적게 소유하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어서 돈 쓸 데가 적다. 자연스럽게 돈이 모인다. 정신적 만족감 뿐만 자산에 있어서, 무소유는 소유로 이르게 되는 길이다.


꼭 필요한 데에만 돈을 쓰고, 일단 사지 않는 습관을 갖는 삶을 어떤 이들은 '정신승리'라고 한다. 돈을 실컷 쓰고 싶지만 쓸 수 없어서 '미니멀 라이프'로 합리화한다는거다. 글쎄. 나는 있는 대로 돈을 쓰고 충동구매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게 오히려 더 정신승리에 가까운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린다.


"적게 소유하는 것에 만족하는 삶은 돈이라는 에너지를 보존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 <심플하게 산다> 중, 도미니크 로로 지음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미니멀 리스트. 그게 나다. 축적의 즐거움 없는 미니멀 라이프였다면 오래 실천 못 했을 것 같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미니멀 리스트. 평소 씻고 바르는 데 드는 용품의 전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기후위기 대응


기후위기 대응도 그렇다. 지구를 지켜야 겠다는 마음은 간소하게 살면서 천천히 스며들었으나, 꽝! 하고 인식의 지평이 크게 흔들린 사건이 있다. 책이다. 제목부터 아주 자극적인 책.


마크 보일의 <돈 한 푼 안 쓰고 1년 살기>.


절약을 자극할 책이 필요했던 때에,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1년을 살았다는 영국 남자의 얘기에 끌렸다. 한 푼 안 쓰고 살 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티끌만큼이라도 따라 한다면, 절약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몹시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던 책이었으나, 읽고 나니 세계관이 흔들렸다.


소비는 곧 석유를 쓰는 일이었다. 석유를 중심으로 물건의 생산, 유통이 이뤄지니까. 물건 속에 석유가 있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돈 한 푼 안 쓰는 일'이었던거다. 나한테도 좋은 일만 가져다주었던 절약이, 타인에게도, 후손에게도 도움이 된다니. 절약에 구실이 붙었다. 옷 한 벌 살까 싶다가도, '에구... 기후 위기도 심한데...'라는 걱정이 들면, 아주 쉽게 쇼핑창을 닫아버리게 됐다.


기후 위기 대응. 아주 완벽하고도 철옹성 같은 소비 통제의 '만능 수비수'가 되었다. 부의 추월차선은 교통사고라도 날까봐 타지 못하지만, '서행차선'이라도 타려고 한다. 아주 느리지만, 사고 위험도 적고, 마음도 편하다. 돈을 쓰지 않고, 남는 돈을 모아 저축하기. 나는 이게 좋다.


그렇다. 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기후 위기 대응을 한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건강하게.


불순한 미니멀 리스트. 꿍꿍이가 있는 기후 위기 대응. 돈을 모으기 위한 미니멀 라이프와 기후 위기 대응이 본질을 해치는건 아닌가, 자주 멈춰서 생각해본다. 되묻는다. 꼭 순수해야 하는걸까?


순수하지 않은 마음이라 더욱 건강해졌다. 나만을 위한 절약이었다면, 애초에 오래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한 식기 세척기와 빨래 건조대가 더 합리적이지 않나. 인간은 아주 복잡한 사람이라, 장래를 위해 돈을 저축하고 싶으면서도, 오늘 당장 멋진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싶기도 하다. 나를 위한 일은 저축과 소비를 오간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는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오늘의 나를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오늘의 나'이기 때문에 '돈을 써버리자!'며 속편히 카드를 긁는다.


미니멀 리스트 자아는 '오늘의 나'가 쇼핑 센터로 출입하는걸 막아섰다. 물건이 늘어나봤자 (돈만 쓰고) 공간만 늘어나서 나중에는 물건에 치여 몸과 마음이 지칠거라고. 강하게 설득했다.


제로 웨이스트 자아는 '오늘의 나'가 건조기를 사려는 충동을 가뿐히 저지한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테니까. 최신 가전제품 구매 대신, 빨래 건조대에 젖은 빨래를 하나씩 널었다. (혹은 빨래를 너는 남편에게 응원봉을 휘두르거나.) 더 나아가 오래되고 헌 물건이 좋아지고, 화려하고 번쩍이는 차림새를 가진 사람보다 소박한 사람들에게 호감이 갔다. 새 물건으로 둘러 싸인 사람들을 숭상하는 문화가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촉진할테니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야, 민주적인 세상의 균형이 맞아 나라가 번성하듯, 개인도 마찬가지다. 돈만 좋아하는 마음보다, 무조건적인 미니멀 라이프보다, 맹목적인 기후위기 대응보다, 이 세 가지 마음이 섞여 시너지를 낸다. 불순하면 어때. 조화로우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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