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가 트렌드가 되었다는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이미 가질만큼 가졌기 때문에, 넘치는 물건을 버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굶지 않는건 사실이나 경제 호황기는 저물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경제 성장이 이뤄진다면, 가진게 충분해도 또 가져도 될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장기불황을 피부로 느끼니, 가진 것부터 덜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위기감을 느낀다.
길고 긴 경제 불황이 눈 앞에 있다. 미국의 무역 전쟁과 4차 산업 혁명에 따른 산업 구조 개편을 앞두고, 우리는 모두 바람 앞의 등불이다. 고금리와 대량 해고, 적은 일자리. 절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절약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었다. 절약을 기꺼이 즐기는 방법을 익히지 못 한다면, 어려운 시기를 앞두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순수한 신념에서 시작하지 못 했다. 미래의 가정 경제를 담보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한' 생활양식과 저축액을 갖추고 싶어 절약한다. 미래가 불안해서, 현재를 기꺼이 즐기는 생활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 모순 같다. 그렇지만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해야 오늘을 더 힘차게 살 수 있듯 미래의 불황을 불안해하니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쓰고 싶은만큼 쓰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한 달 수입 전부를 저축하지 않고 모두 써버리면, 매일매일 외식도 할 수 있고, 집도 큰 곳으로 이사 갈 수 있고(대출 원리금을 월급에서 갚으면 되니까), 멋진 명품 가방도 척 두를 수 있을 것이다. 옷도 좋은 옷만, 책도 매번 사서 읽을 수도 있겠지. 한 달에 한 번 해외여행은 어떨까?
그러나 그건 나의 소원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원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펑펑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소원의 높이를 낮추는 것.
나중에 돈을 펑펑 쓰려고 저축하는건 아니다. 길고 긴 경제 공황과 안개에 가린 듯 모호한 4차 산업 혁명 앞에서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뿐이다. 미래가 두렵다. 그러나 두려운 미래를 위해 과한 노동으로 현재의 삶을 갉아먹고 싶지 않다. 행복의 상한선을 넘지 않을 정도의 적정 소비를 알아가기 위해 절약한다. 절약하다가 이게 내 삶을 넘어서버리면, 긴축 재정을 해제한다. 외식비를 좀 더 예산으로 잡는다거나, 여행비를 남긴다.
소비를 통해 많은 과시용 물건과 행사가 늘어갈 수록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벌이를 초과한다거나, 적정 저축액이 없는 상태라면 나쁜 소비다. 그저 눈앞의 행복을 가장한 다음날의 불행이다.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행복한지 아는 방법은 지출해보는게 아니라, 지출해보지 않는데 있다. 없어도 괜찮은 것을 알아야, 적은 돈으로도 즐겁게 산다.
의외로 돈 들이지 않아도 삶은 고만고만 평화롭다. 소소한 행복들로 채워짐을 느낀다. 적은 씀씀이 덕분에 저축액은 늘어서 불안을 줄었다.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능력 또한 좋아졌다.
정답은 없다. 쓰는 삶도 좋고 덜 쓰는 삶도 좋다. 그러나 덜 쓰는 삶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간소한 삶에 대한 진입장벽이다. 그 장벽은 너무 높고 까마득해서, 해보기도 전에 차라리 쓰고 즐기자며 단념한다.
쓰는 삶, 덜 쓰는 삶을 모두 살아본 사람으로서 바라건데, 덜 쓰는 삶이 주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모두가 누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