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바꾸던 일, 스스로 해보기

by 최다혜

직업이 초등교사인 나는, 사실 잘 하는게 '애들 가르치기' 밖에 없었다. 즉, 아이들 교육에 대한 지식, 방법을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잘 한다는 이유로 월급 받고 살았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나머지 생활 필수품들을 샀다.


생활 필수품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식재료, 핸드폰, 자동차, 세탁기, 자동차처럼 남들이 흙에서 기르고 공장에서 만들어준 유형의 물건. 둘은 외식, 영화, 오감놀이센터, 헬스클럽 같은 무형의 서비스.


모든 것을 돈으로 바꿨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제외한 모든 것에 잘 할 자신이 없었기에, 돈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팽이버섯이나 소고기, 아니면 자동차를 내 손으로 마련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20140213_090517.jpg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말고는 잘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못 하는건 농수산물이나 생활용품 뿐만 아니었다. 맛있는 식사도, 즐거운 여가도, 건강한 몸도 돈만 있으면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남들이 다 해주는 '서비스'의 즐거움에 푹 빠져, 결국 '나는 돈 안 쓰고 휴가를 보낼 순 없어'라고 단정지었다. 사실 3차 산업에서 파생되는 '서비스'라는건 누구나 조금만 익히면 할 수 있는 영역인데도 말이다.


우린 돈으로 모든 것을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건강도, 외모도, 행복도 다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중. 김민식 지음.


'잘 하는 일 한 가지'만 찾으면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분업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산업 시대였기 때문이다. 분업은 가장 짧은 시간에 최대 성과를 내는 효율 만점 시스템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만 할 줄 알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단점은 외부 경제 상황에 쉽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교사로 살면서 월급받는 안락의 반대편에 두려움이 있었다. 이는 곧 실직 혹은 건강 이상 같은 개인적 변화, 경제공황 같은 사회적 변화에 삶을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음을 뜻했다. '가르치는 일'로 더 이상 돈을 벌지 못 했을 때, 삶의 질은 추락하고 불행해질게 뻔했다. 그 동안 다 돈으로 해결해왔으니, 돈을 못 버는건 삶의 실패를 뜻했다.


도시형 자급자족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는 어디까지 스스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도전정신이 만났다. 돈으로 바꾸던 일들을 스스로 해보고 싶었다. 분업에 쉽고 효율적으로 맡겼던 일들을 내 손으로 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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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노력이 '집밥'이었다. 외식을 대신할 수 있는 맛있고 간편한 밥상을 차리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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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노력은 '부모 놀이'였다. 장난감이나 전문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어설퍼도 놀이터에서 흙 파고, 귤에 얼굴을 그리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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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나들이'다. 가능한 전문 레져 시설 대신 도서관, 공원, 책방을 산책했다. 놀이를 '제공'해주는 곳을 찾아가는게 아니라, 우리 가족 취향 저격 놀이를 만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수행자도, 스스로를 고통에 밀어넣고 즐거움을 느끼는 변태도 아니었기에 언제나 '행복의 적정선'을 지키려 노력했다. 정말 맛있는게 먹고 싶으면 지갑 열어 타파스와 먹물 빠에야를 먹었다. 향긋한 커피로 하루의 기운을 채우고 싶을 땐 스페셜 티 카페로 갔다. 그러나 습관적 외식이나 타성에 젖은 가족 나들이를 멀리했다.


점점 소비의 역설을 깨달았다. 덜 쓰는 삶을 살기 전, 행복해지려고 소비했다. 그러나 오히려 큰 맘 먹고 사지 않으니 더 행복해졌다. 물건과 서비스의 빈자리를 사람이 메우게 됨으로써 생기는 행복이었다. 정직한 노동으로 채울 수 있던 즐거움이었다. 돈이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행복을 사람 손길로 가장 두텁게 쌓았다.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돈은 편리했으므로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늘어가니, 불안했던 미래에 자신감이 생긴다. 오히려 간소한 삶에서 유의미한 즐거움을 찾았으니, 의외의 수확이기도 하다. 돈에 휘둘리지 않고도 즐겁게 살아낼 수 있는, 나름의 '자급자족'을 조금씩 익혀나간다.


의미있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 행복하고 싶어 연말에 '큰 맘 먹고' 근사한 식당에 갔던 과거를 뒤로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큰 맘 먹고' 사지 않는 날을 계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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