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나들이 삼아, 강릉에 새로 생긴 책방에 다녀왔습니다. 아끼는 동네빵집 GAROO와 책방의 조합에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어요.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온갖 책이 빼곡한데 부드러운 생크림에 딸기와 설탕가루를 얹은 빵, 그리고 커피를 곁들여 책을 고를 수 있다니! (*먹거리를 취급하는 책방이기에, 책 구입 후 커피와 빵을 주문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책, 커피, 꽃. 이 세 가지 사치만 적당히 충족되면 제 삶의 질은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셋 중 어떤 것도 '남보다 더 나은' 무엇을 과시하기 위해 사지 않습니다. 제 취향일 뿐이지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을 살핀 결과물입니다.
명품 옷이나 가방, 귀금속, 최신형 휴대폰, 혹은 유럽산 자동차나 넓은 고급 아파트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남의 취향에 맞춘 고급 물건일 뿐입니다. 입바른 말만 하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건 아닙니다. 과시용 소비 때문에 너무 궁색해졌던 경험을 고백할게요.
피렌체 신혼여행에서 산 하늘색 프라다 가방을 메고 다니면, 이상하게 당당해 집니다. 너무 우습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프라다 가방, 그게 뭐라고 사람을 더 으스대게 만들더라구요.
프라다 가방 뿐이었을까요? 우리 부부의 첫 차, 쉐보레 올란도를 뽑았을 때도, 저희 차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크고 좋은 차. 목에 힘이 좀 들어갔었더랬죠.
더 있습니다. 49㎡ 집에 살다가, 바로 옆 동 59㎡으로 이사왔을 때도 그랬어요. 전망 좋고 방 한 칸 더 넓은 저희 집이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우월해보였습니다.
좋은 가방, 큰 차, 조금 더 넓은 집을 그렇게 좋아할거면서 왜 고고하게 아닌 척 하냐구요?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임을 인정하고 과시를 즐기면 안 되는거냐구요? 안 될 것도 없지만, 과시욕의 즐거움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을 굉장히 초라하게 만듭니다.
프라다 가방을 메면, 다른 사람들 가방만 보입니다. 사람은 안 보이고 가방만 보여요. 그러다가 구찌라도 나타나면 움츠러듭니다. 또 저희 차 올란도도 처음에는 친구들 중 가장 좋은 차였지만, 점점 친구들이 결혼하고 자리잡으면서 쏘렌토, K7, 그랜드 카니발을 끌고 다니더라구요. 속으로 참 쭈글거렸습니다. 그뿐인가요? 59㎡ 정남향 고층, 저희 집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 84㎡ 친구집에 다녀 온 날 부러워 죽을 뻔 했습니다. 그 후 한 달 후 즈음 충동적으로 전세형 임대아파트로 새아파트 계약했습니다. (계약을 후회하고 분양권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팔리지가 않아요. 큰일났어요.)
과시용 소비의 끝엔 언제나 저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가 살아가는 모습보다 물건을 자꾸 보게 됩니다. 훌륭한 사람들을 눈 앞에 두고도 물건으로 이리저리 재게 되면, 결국 제 마음만 초라해지고 가난해지더군요. 참 찌질한 최다혜.
비교는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그래서 책, 꽃, 커피. 이 세 가지만 풍성하면, 나머지는 그저 집에 있는대로 씁니다. 가족가방 말고 에코백, 좋은 옷 말고 취향 맞는 보세 옷, 멋진 해외 여행말고 집 근처 산책. 차도 고장날 때까지 부품 바꿔가며 탈꺼고,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 아파트라 부담은 덜하긴 하지만... 분양권이 나가야 할텐데요! 여기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오가는 미분양 관리지역입니다. 윽.)
남들보기에 여윳돈으로 더 좋은 물건을 사지 않는게 이상해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물건이 남의 시선을 움직이는거라면 사지 않습니다. 대신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면 고민 후 지갑을 열 수도 있어요. 남의 집이 부러워서 더 좋은 집을 계약했더니, 너무 후회됩니다.
과시하지 않고 제 멋에 살기. 남의 시선이 아닌 내 목소리로 살아가기. 21세기를 압도하는 '지금 그리고 여기', '용기의 철학'은 무엇을 사냐, 사지 않느냐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