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건조대 발목이 부러졌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이음새는 5년이 지나니 제구실을 못 하게 되었다. 그 탓에 건조대 양쪽 축이 중심을 잃었다. 다 된 빨래를 널기위해 급한대로 베란다 창문에 살짝 기대어 썼다. 그러기를 2주째. 불편하지 않았다. 마음이 찜찜했을 뿐, 건조대는 여전히 어른 둘, 아이 둘 빨래를 건사했다.
우리 부부는 새로 사기 보다, 저 녀석이 제 몫을 다 해낼 때까지 써보자 다짐했다. 빨래를 널 수 있다는 건조대의 본질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고, 동시에 큰 짐을 버리면 환경에 부담이 될 것이다. 결국 정근수당에 명절 보너스까지 두둑한 1월이지만, 2만 3천원짜리 6단 빨래 건조대를 새로 들이지 않았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고 내게 근사한 새 물건을 사준다면, 아직 글 속에 내 본 마음을 다 못 담은 비루한 실력 탓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역할을 충분히 다 하는 녀석을 구태여 새로 들이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새 물건을 사서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든다는 마음의 짐이 더 크다. 그러니 혹여 빨래 건조대를 사주시려거든, 미리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생각한대로 산다는건 쉽지 않다. 하루 세 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한 후, 졸린 녀석들 업어주기에도 일상의 밀도는 진하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건지 생각할 틈이 없다. 여차저차 이웃들 사는 대로 비슷하게 사는게 가장 무난하고 위험부담 적은 선택이다.
그런데 취미삼아 시작한 독서는 빨래건조대를 새로 들일까 말까에 대해, 멈춰서서 생각하게 했다. 귀가 얇은데다가 마음 먹은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한 권, 한 권의 책은 삶을 강하게 지탱했다. 작가들의 수고로움 덕에 '생각'이란걸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미니멀라이프와 재테크 서적으로 본격 독서를 시작했을 땐,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건 합리적 선택과 성실한 행동이야! 40대까지 10억 자산가가 되겠어!"
투자 이야기가 제일 재밌고, 절약의 목적도 부의 증식이었다. 부자가 된다는건 '정답'이었다. 확신했다.
그러다가 소로우의 <월든>을 만났고, 마이크 비킹의 <휘게 라이프>나, 마크 보일의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를 읽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석유와 전기 없는 삶을 실천하는 하얼과 페달의 <안녕, 동백숲 작은 집>의 책장 한 장, 한 장 넘어가는걸 아까워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읽는 중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에 전기와 석유 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전기 없이 사는 부부'라고 부르곤 한다. 그 말 속에는 '욕망을 억제하고 욕구를 줄이고 산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욕망을 억제하려고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니다. 욕망을 좀 다른 방향으로 풀어 보려고 했을 뿐이다.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좋은 점들이 있듯 숲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좋은 점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숲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와 호사를 누리고자 노력한다.
- <안녕, 동백숲 작은 집> 중. 하얼과 페달 지음.
" 부자가 되겠다고 맹렬히 달려가던 과거의 나는 900L 양문형 냉장고를 닮은 것 같아. 다 먹지도 못할 식재료를 큰 공간에 욱여담아 결국 버리게 되는 과욕의 상징. 어쩌면 절약은 개인의 소소한 행복과 지구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일지도 몰라."
예전처럼 확신하진 못 하겠다. 나는 지방에 살고, 어린 아이 둘에 양가 어른 건강하시며 휴직 중이기에 절약이 몸에 맞다. 그러나 아이가 좀 더 크거나, 혹은 더 어리거나, 부모님 몸이 아프시다거나, 맞벌이라면? 경험하지 못 한 상황이라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감히 말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는건, 현재의 생각이 내 인생에서 가장 다듬고 다듬은 숙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오직 부자가 되고자 했을 때, 공허함을 느끼고, 적은 물건으로도 행복한걸 보니 굳이 부자가 되진 않아도 되겠다며 이전 생각을 다듬었다.
이전 생각은 다음 생각의 밑거름이다. 세상에 정답이 없다고 해서, 생각을 멈추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확신하지 못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누군가가 '미숙한 이야기지만...'하고 운을 띄운 후 들려주는 이야기에 내가 더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부족한 이야기라고 자신없어 했지만, 내게는 촉촉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니 1년 뒤 혹은 10년 뒤 내가 보기에 자다가 이불 걷어찰 글이라 할지라도 계속 쓰고 싶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민망한 바람 때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마크 보일, 간디, 그리고 하얼과 비파. 엄청난 사람들의 굉장한 실천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집밥 해먹는 것 정도는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이게 뭐 대단하다고 글을 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나아지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나가는게 제 할 몫이라 생각한다. 하얼과 비파처럼 장흥 동백산에서 시냇물에 빨래하고, 나물을 캐며, 나무를 깎아 수저를 만들며 살지는 못 할지라도 말이다.
추운 겨울, 또다시 새로 생긴 키즈카페에서 편하게 하루 보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살고 싶어, 삼척 '피노키오 나라'로 향했다. 갖가지 나무를 만져볼 수 있고, 나무로 만든 놀이방이 있는 소박한 공간이다.
관람하고 나니 2시. 닭칼국수 맛집에 갈까 고민했다. 역시 생각한 대로 살아야겠다. 오전에 밥과 떡, 과일 때문에 충분히 배가 불렀기 때문에, 굳이 배터지게 먹을 필요는 없었다. 집으로 와서 두부를 굽고 메밀부침개를 데웠다. 간소한 식사로 몸에 부담 없고,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리 부러진 빨래 건조대에 수건과 옷을 널었다. 역시 잘 버티고 서 있다. 사지 말아야겠다. 충분한데다 마음도 만족스러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