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혜 Oct 21. 2019

어설픈 환경염려를 자랑합니다.

쓰레기는 하찮지 않다. 난 쓰레기만 보면 죄책감이 든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단 한 장의 라면 봉지 비닐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니 눈 앞에서 치운 후 잊어버렸던 쓰레기들을 허투루 대할 수가 없다.


두부 반 모를 먹어도 플라스틱과 비닐이 생긴다. 라면 한 봉지를 먹어도 벌써 주먹만한 비닐을 버린다. 최소한으로 먹고 사는 일에도 현관 앞 분리수거함과 휴지통에 쓰레기는 하루만에 수북히 쌓여버린다. 무서운 속도다. 그러니 허투루 비닐 한 장을 쓰면 가슴이 덜컥 내려 앉고, 페트병 라벨을 미처 때지 않고 버리면 후회 된다.


나는 왜 쓰레기 앞에서 슬퍼지는걸까. 아주 명확한 한 가지 사실 때문이다. 이 골칫거리를 눈앞에서 치운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는게 아님을 말이다. 심지어 우리 몸 속 구석구석 자리 잡아 호르몬을 교란시킨다. 북극곰 몸 속 구석구석 돌아다닌 미세 플라스틱 때문에 많은 북극곰들은 자웅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비닐과 플라스틱이 '썩은' 줄 알았는데, 썩지도 못 하고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비닐과 플라스틱은 재활용도 잘 안 된다. 그러니 분리수거 잘 하는건 최소한의 노력일 뿐, 쓰레기 문제를 뿌리 뽑으려면 '하나라도 덜 생산되게' 하는 수 밖에 없다.


마트 가기 전 준비물: 장바구니, 밀폐용기, 깨끗한 비닐, 손수건 / 마트 다녀 온 후: 가져갔던 깨끗한 비닐 한 장을 사용했다.

완벽한 환경 운동가가 꿈은 아니다. 완벽한 한 명의 환경 운동가가 되기보다, 나처럼 어설픈 환경 염려인이 100명쯤 늘어나길 바란다. 왜냐하면 100명은 단순히 '100명'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어설픈 100명을 보고 자극 받을 100명. 또 그 100명을 보고 자극받을 100명의 힘은 결국 지구를 살리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마트에 갈 때 장바구니는 기본이요, 요즘에는 집에 있는 깨끗한 비닐을 챙겨간다. 물티슈와 휴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손수건도 챙긴다. 환절기 비염 때문에 흐르는 맑은 코를 닦기 위함이다.


어제는 까만 비닐 봉지에 흙당근 하나를 담아 왔다. 돈까스 용 돼지고기 안심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오고 싶었는데, 직원분께 말씀드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비닐 한 장을 더 쓰게 되서 아쉬웠다.


가장 중요한건, 까만 비닐 봉지에 담은 흙당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거다. 이게 어설픈 환경 염려인 100명이, 1000명이 되고, 1000명은 다시 10000명이 되는 방법이다.


까만 비닐 봉지에 담은 흙당근 사진을 본 누군가가, 무심코 쓰는 물티슈 한 장, 비닐 팩 한 장을 아껴주시면 좋겠다. 또 아껴주신 그 마음을 SNS에 자랑해주시면 좋겠다. 그 착한 글을 읽은 다른 사람이 또 일회용 젓가락을 거절하거나, 치킨을 포장해 올 때 밀폐용기를 들고 가실 수도 있지 않을까. 밀폐용기에 치킨을 담아오신 분이 또 글로 남기셔서, 그 글을 읽은 누군가는 과일을 살 때 비닐 말고 천 가방에 넣어오실지도 모른다.


나는 어제 '고작 비닐 한 장'을 아꼈다. 나비 날개짓에 가까운 발버둥이다. 그렇지만 SNS 글로 남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비 날개짓은 나비 효과처럼 거대한 토네이도를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


어설픈 대중의 힘을 믿는다. 환경 문제를 걱정하지만 말고,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대중. 그 대중의 힘이 모여 '하나라도'. 정말 단 '하나라도' 덜 생산될테니까, 우리 세대에서 환경 오염을 가까스로 멈추면 좋겠다.


어설픈 환경 염려인 100명의 힘으로 우리 세대에서 환경 문제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쇼핑은 투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