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그 낭만적 철학 - 망한다 해도 삶이 무너지지 않을 방법
지난 일주일,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가수 아이비의 공연을 즐겼다. 그녀가 순회 중인 뮤지컬 중 몇 곡을 노래하는 앙코르 공연이었다. 눈과 귀가 즐거워서 행복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3D 프린터의 제작 과정을 보고, 코딩의 기본 알고리즘을 귀여운 달팽이 로봇으로 익혔다. 큰 아이는 처음으로 보조 바퀴 달린 두 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공원 끝에서 끝으로 운전하기도 했다. 플레인 요거트에 바나나와 블루베리를 넣어 3살, 5살 자기들이 요리사라 하는 귀여움도 깜찍했다. 엄마로서 충만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으로 친정 엄마와 나, 그리고 나와 두 딸의 '모녀' 관계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고 왔다. 글쓰기 모임 자료를 준비하고, 준비해간 PPT를 나누며 '글과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의미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존감이 충만해졌다. 사람을 만나 사람을 사랑했고, 사랑받고, 그래서 행복했다.
지난 7일 동안 시에서 마련한 무료 공연을 관람하고, 의미있는 육아를 했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질좋은 공공 인프라는 도처에 있었다. 나는 행복에 큰 돈 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게 망한다 해도 내 삶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추락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행복의 프레임
행복에도 프레임이 있다. '비교' 프레임과 '경험과 관계' 프레임.
비교 프레임을 가지면 경제적 능력과 행복을 떨어뜨릴 수 없다. 불행과 빈곤을 동시에 거머쥐게 된다. 비교 프레임은 남들보다 더 좋은 물건, 혹은 더 나은 외모를 가짐으로서 오는 우월감에서 행복을 느끼는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 위험한 이유는, 언제나 나보다 더 부자가 있고, 더 미인이 있다는 점이다.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얄팍한 승리감에 잠시 도취되었다가도, 다시 깊고 우울한 열패감에 기분이 나빠진다.
비교 프레임이 위험한 이유 두 번째는, 가정 경제 건전성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소수의 자산가들은 괜찮겠지만, 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비교 프레임' 때문에 빚을 지고, 현금을 몽땅 쓴다. 비교 할 수 있는 것은 물건과 외모다. 여기에는 대개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열패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혹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소비한다. 소비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빚을 더 진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거금을 치러야 할까?
반면 '경험과 관계' 프레임은 배우고, 사랑하고, 나누고, 협동하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데서 삶의 만족을 느끼는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을 가진 사람은 부자일 수도 있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바닷가를 거니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이 프레임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비결에 구매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 없다. 그리고 조금 해진 가죽 신발을 신고 해변을 걷는다고 해서, 그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함께 하는 시간과 장소가 있으면 된다.
또 '경험과 관계' 프레임은 절약과 저축에 보탬이 된다. 안 쓰고 남는 돈은 휘발되지 않는다. 이 돈을 저축하고 적절한 자산으로 바꾸어 둔다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왜곡된 YOLO의 기본 전제는 '나는 금방 죽는다'다. 내가 금방 죽어야 오늘 거하게 쓴 돈이 의미있다. 하지만 진정한 YOLO의 전제는 '나는 100살까지 산다'다. 헛된 희망이 아니라, 의료 강국 대한민국에서 사는 한국인들 수명 곡선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100살까지 안정적으로 잘 살려면, 할 줄 아는 일들을 기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챙기며, 얼마간의 돈도 저축해야 한다. 이건 소비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 안 써야 얻는 것들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의 재주를 나누면 할 줄 아는게 늘어나니까.
경험과 관계 프레임을 가지면 경제적 능력과 행복을 떨어뜨릴 수 있다. 행복을 사기 위해 돈 쓰는 일을 줄이는 덕에 자산도 남는다. 경제적 능력과 행복을 분리시킬 때, 역설적으로 경제적 안정과 행복 두 가지 모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행복 프레임을 개선하는 일 말고도 , 경제적 능력과 행복을 분리시키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인프라'다.
감사하게도 21세기 경제강국 대한민국(우리를 아직도 개발도상국으로 보는가?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무역 경제 강국이다.)에 사는 덕분에, 온갖 인프라들이 잘 갖춰져있다.
강가, 산, 바닷가, 호수를 잘 가꾸어 공원화된 곳이 많다. 도서관만 해도 지역구별로 갖춰져 있기도 하다. 강원도 동해 바다를 끼고 사는 지방 소도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강릉의 소프트웨어 체험 센터, 망상의 연어 페스타, 삼척 이사부 사자공원의 그림책 전시관은 모두 무료다. 그런데 어느 하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 교육, 무엇을 걱정하는가. 도서관과 학교에만 성실해도 충분하다. (여기서 충분하다 함은, 남들보다 더 잘 하는게 아니라, 아이가 그 나이 때 배워야 할 교육과정을 충분히 이수하는지의 여부다.) 돈 들이지 말고 아이의 노력을 끌어올리자. 그게 자기주도 학습이지 않나. 공교육 교사들은 꽤 공부를 잘 한 재원들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의 골수까지 빨아먹게 하자. 수업에 집중하고, 질문하게 해야 한다.
절약, 결국 망한다 해도 삶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강력한 방편이다. 호화 사치품을 더 들이지 않아도 만족스러울 수 있는 행복 프레임. 교육과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인프라. 이 두 가지를 실천하면 자연히 절약할 수 있다. 결국 절약은 망한다 해도 삶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강력한 방편이다.
경제적 능력과 행복의 상관 관계가 ‘0’에 수렴하는 그 날을 꿈꾼다. 그 날을 위해 식탁과 지붕과 아이들 양육비를 제외한 나머지 호화 사치품에 돈을 아끼자.